[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52>뇌과학자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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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환 교수는 “한국이 AI 분야에서 선진국에 뒤지지 않으려면 산학연이 역할 분담을 해 자율경쟁 형태로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생태계 조성과 AI 법,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가위 알파고 쇼크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세기 대국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인간 발명품이 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상을 바꿀 AI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뇌과학자인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주임교수를 3월 25일 오후 4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 우정정보통신관 410호실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한국정보과학회 인공지능 소사이어티 회장으로, 국내 AI 연구 1세대 학자다. 그는 무척 바빴다.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곳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 AI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AI는 빅테이터나 통신, 스마트폰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분야다. AI를 한국에서 연구한 지는 30여년 됐다. AI 연구 대부로 불리는 김진형 소프트웨어(SW) 정책연구소장이 내 박사 과정 지도교수였다. 이번 알파고 대국 이후 학생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교육열이 높은 중학교 학부모들이 “알파고가 어디에 있는 고등학교냐”라고 물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런 관심이 한때의 붐이 아니길 바란다. AI 연구는 장기간 꾸준히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이 교수는 김 소장으로부터 `AI로 박사 과정을 밟아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아 뇌공학 연구를 했다고 한다.

-대국은 어떻게 예상했나.

▲나는 이세돌 9단이 이길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바둑 최고수인 이 9단이 알파고에 패하는 걸 보고 놀랐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이기다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대학에 인공지능학과는 있는가.

▲아직 한국 대학에는 없다. 영국 에든버러대에는 AI학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이 있다.

-알파고의 지능 수준은 어떻게 보나.

▲알파고가 인간 바둑 최고수를 이겼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네 번째 대국 후반부에서 이세돌 9단의 회심의 한 수로 인해 알파고는 버그 상태에 빠졌다. 아직 알파고가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더 많은 기본 데이터를 확보하고 기계학습(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개선하면 성능이 좋아질 것이다.

-한국과 외국 AI 기술 차이는.

▲2015년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분석에 따르면 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2.6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I SW만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최근 전문가 12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4.3년 뒤진 결과로 나타났다.

-AI와 인간 사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AI는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확률과 통계 분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 사고방식과 차이가 많다. 예를 들면 인간은 사진 한 장만으로 학습이나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AI는 수많은 유사 사진을 보고 학습해야 추론이 가능하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AI는 아직 초보 수준이다.

-외국 기업들의 AI 투자 실태는.

▲구글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14년 동안 AI 관련 기업 인수에 280억달러(약 33조7000억원)를 투자했다. 중국 인터넷기업 바이두는 3억달러(3600억원)를 투입, 미국 실리콘밸리에 딥러닝연구소를 설립했다. 토요타는 AI 연구소 설립에 10억달러를 투자한다. 해외 스타트업 기업 AI 투자 규모는 2010년 4500만달러에서 2015년 3억달러로 증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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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한국의 AI 투자 현황은.

▲외국 기업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네이버와 NC소프트에서 2010년 초반부터 AI 연구를 시작해 AI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삼성전자가 AI 부문에 투자한 금액은 `지보`에 2000만달러, `바이카이우스`에 48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AI 관련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투자는 걸음마 수준이다.

-세계 AI 시장 규모는 얼마로 추정되는가.

▲올해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270억달러에서 2017년 1650억달러로 연평균 1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AI 시장은 2013년 3조6000억원에서 2017년 6조4000억원으로 예상된다.

-한국 AI 연구 인력은.

▲IITP에 따르면 AI 연구개발(R&D)을 하는 연구소와 대학, 업체는 39개다. 그 가운데 32곳은 연구 인력이 50명 미만이다. 대다수가 AI 관련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의 AI 연구 인력은 다 합쳐도 구글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의 AI 특허 건수는.

▲한국과 미국, 일본, 국제특허기관의 4개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한국인 보유 AI 특허는 306건이다. 이는 AI 관련 특허 1만1613건의 3%에 불과하다. 미국의 20분의 1,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AI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은.

▲AI가 인간 수준에 다다르긴 했지만 창의성이나 감성은 따라오지 못한다. 지능과 감성은 다르다.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직업, 이를테면 성직자나 예술가는 인간만 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2013년 9월 발표한 `직업의 미래`라는 논문에 따르면 앞으로 15년 이내에 전체 직업의 47%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AI는 영상처리와 음성인식 같은 기존 분야는 물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뇌 영상, 질환 진단, 자율주행자동차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 갈수록 적용 분야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 대신 새 직업군도 등장할 것이다.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

▲알파고에서 보듯 이미 특정 영역은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을 하나 둘 넘어선다면 언제가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다. 미국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면 각종 첨단기술이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하는 시작점인 특이점이 온다”고 주장했다. AI가 스스로의 지능 증식으로 무한 지능을 갖게 돼 인간보다 앞설 것이라는 것이다. 분명한 점은 예상보다 AI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이다.

-AI에 의지할 경우 인간의 기능이 퇴화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단순 반복의 인간 기능은 퇴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AI를 잘 활용하면 창의 및 감성 기능은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본다.

-AI가 인간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AI는 인간이 개발한 여러 기술 가운데 하나다. 살인로봇과 같은 AI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인간이 AI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AI 기술을 잘 활용하면 미래 생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생산성이나 부가가치는 AI로 인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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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AI 관련 법과 규정을 만들어야 하나.

▲AI 기술이 발전해 우리 삶과 깊은 연관이 있다면 당연히 법과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현재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관련 법률을 만들고 있다. 미국은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100년의 AI 연구(100 year study on AI)`와 같은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AI 기술의 역작용이나 부작용에 대한 법 및 윤리 문제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도 각 분야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AI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해킹 같은 역기능, 법·제도·윤리 문제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 로봇 3원칙이란 게 있다. 인간 보호, 명령 복종, 로봇 보호다. 우리도 AI 윤리규정 제정을 준비해야 한다.

-어떤 AI 전략을 수립해야 선진국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기본 전략은 산·학·연·관이 각각 맡은 바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우수 인력 양성과 핵심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산업체에서는 다양한 AI 기술을 개발해 산업화에 노력해야 한다. 연구소는 학교와 산업체 사이에서 기초기술과 산업기술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는 AI 연구 생태계 조성과 전문 인력 양성, 법 및 제도로 AI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 지원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개발한 AI 기술을 잘 팔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면 하루아침에 삼류 기업으로 추락하게 된다. 어느 기업이든 사라질 때는 한순간이다.

-정부에 바라는 것은.

▲정부가 AI산업 육성을 주도하기보다는 자율경쟁 형태로 민간에 맡기는 게 좋다. 정부가 우수한 AI 인력 양성, 산·학·연 생태계 조성, AI산업 발전과 관련한 법 및 제도상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산·학·연·관이 조화롭게 역할을 분담하면 최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영국 윈스턴 처질이 한 “장점이나 지적 능력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이 우리 잠재 능력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라는 말이다. 취미는 영화감상이다. 어릴 적에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다. 중간에 포기했다. 집안에서 TV 채널권은 나한테 있다. 새로 나온 영화나 드라마는 다 본다. 영화감독들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공상과학(SF) 영화가 현실이 되는 세상 아닌가.

이 교수는 서울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 학위, AI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1989년에 받았다. 고려대 컴퓨터학과장, BK21 플러스 뇌공학글로벌소프트웨어 인재양성사업단장, 뇌공학연구소장, 한국인지과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정보과학회 인공지능소사이어티 회장, 현대자동차 석좌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펠로, 국제패턴인식학회 이사 겸 펠로를 맡고 있다. 이 교수가 공동 집필한 `뇌인지공학 최신연구동향`이란 연구서는 세계적 과학 전문 학술지 출판사인 미국 스프링거에서 2015년에 출판했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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