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0년까지 500억원을 투입, 한국형 슈퍼컴퓨터를 개발한다. 슈퍼컴 핵심 소프트웨어(SW)는 물론 서버 등 하드웨어(HW)까지 자체 개발한다. 예산 삭감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사업 내용을 재조정하고 예산도 대폭 늘렸다.
27일 미래창조과학부는 2020년까지 500억원을 투입, 자체 슈퍼컴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페타플롭스(1초당 1000조번 연산처리) 성능의 슈퍼컴 구현을 목표로 핵심기술을 국산화한다. 장기로는 현존 최고 수준인 30페타플롭스 규모까지 단계별로 확대한다.
사업은 크레이, IBM 등 외산 슈퍼컴 기술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기상청을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등 국가 보유 슈퍼컴은 모두 외산이다. 대당 5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자원을 모두 외국 기업에서 구매하고 있다.
미래부는 외산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핵심 기술을 국산화할 방침이다. 그동안 시도되지 않은 슈퍼컴 전용 HW 개발도 추진한다. 병렬시스템에 최적화한 x86서버, 스토리지가 대상이다.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등 자체 개발이 어렵거나 시장에 이미 나온 부품은 제외된다. 마더보드는 자체 개발하되 장기 차원으로 ARM과 같은 저전력 프로세서 활용도 검토한다.
슈퍼컴 핵심 기술인 SW도 개발 대상이다. 서버에 탑재되는 펌웨어, 운용체계(OS)를 포함해 스토리지 파일시스템도 개발한다. 슈퍼컴에서 돌아가는 모델링, 시뮬레이션 솔루션도 국산화한다. HW를 식별하는 것부터 운영·관리하는 SW까지 자체 역량을 확보한다. 이 기술을 종합해 2020년까지 1페타플롭스 성능의 슈퍼컴을 구현한다. 현재 우리나라 최고 성능 슈퍼컴은 지난해 기상청이 도입한 `우리(2.4페타플롭스)`다.
김성호 KISTI 슈퍼컴퓨터개발센터장은 “지난해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자체개발 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됐지만 올해 사업 내용과 예산을 키워 재추진한다”면서 “HW는 회로설계부터 보드 설계까지, SW는 펌웨어와 OS를 비롯해 파일시스템 및 공학·설계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래부는 사업 추진을 위해 오는 5월 개발사업단을 꾸린다. 미래부를 주축으로 KISTI, ETRI, 서울대, KAIST 등 산·학·연이 폭넓게 참여한다. 추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참여도 유도한다.
장기 계획으로는 현존 최고 성능인 30페타플롭스 규모의 슈퍼컴 개발 청사진도 작성한다. 2023년까지 기존의 1페타플롭스 규모 시스템을 기반으로 초고성능 슈퍼컴을 개발한다. 기상청, KISTI 등 외산 장비를 구매하고 있는 기관에 적용한다. 이후 해양, 국방, 의료 등 고성능컴퓨팅(HPC) 활용이 필요한 영역으로 확대한다.
사업은 불모지인 국내 슈퍼컴 산업에 육성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을 포함해 제조, 의료, 자원탐사 등 산업 전 영역에서 슈퍼컴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슈퍼컴은 국가 기초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슈퍼컴 톱500 순위에서 미국의 5%, 중국의 9.2% 수준에 불과하다.
미래부 관계자는 “올해 예산이 대폭 삭감됐지만 정책 및 사회적으로 슈퍼컴의 필요성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KISTI는 오는 6월 슈퍼컴 5호기 도입을 위한 제안요청서(RFP)를 공고한다. 지난해 예비타당성 심사에서는 587억원의 도입 예산을 편성 받았다. 연말까지 25페타플롭스 성능, 3~5메가와트 전력소비 제공 등을 기준으로 한 슈퍼컴 공급 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258억원이 들어가는 기반 시설 구축 사업은 올 상반기 안에 진행된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