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상에 없는 오랜 지기(知己)의 이야기다.
“삼성 등 대기업이 앞으로 금융시장에 들어올 겁니다. 많은 움직임이 있어요. 준비해야 합니다. 기자도 스마트금융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하세요.”
5년여 전, 한 은행원을 만났다. 당시 모 은행 스마트금융 부부장이던 그는 내게 만나자마자 수백 쪽에 달하는 문서를 던져줬다. 차 한 잔 마시러 갔는데 장장 2시간 동안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그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기자가 그것도 모르냐는 호통이 이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은행이 다 망한다고 했고 삼성 등 대기업이 금융 사업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자신이 머무는 ‘집’이 은행이 될 거라는 다소 황당한 소리도 했다.
은행원이 스스로 은행이 문을 닫게 될 거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시간이 지나고 이곳저곳을 취재하면서 그가 한말이 거짓말처럼 점차 현실이 됐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더욱 열심히 현장을 뛰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와 만나는 횟수도 줄였다.
어느 날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쓴 기사를 봤는데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좀 더 현장을 돌아다니지 않고 뭐하느냐”고 질책했다. 그리고 여러 기업 움직임도 빠짐없이 알려줬다.
또 시간이 흘러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았다.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SNS로 내용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는 “직접 (은행)창구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모든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는 스마트금융시대를 만드는 게 나의 작은 꿈이었습니다. 저의 집은 시골이었어요. 은행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거든요. 함께 만들어갑시다. 나 혼자 힘으론 부족하니 함께 세상을 바꿔봅시다”는 글을 남겼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암 투병 중이었다. 병원에서도 그는 스마트금융 강국을 만드는 꿈을 놓지 않았다.
지기는 세상에 없지만, 그 꿈과 열정은 지금도 한국 핀테크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금융인들과 함께 살아 있다.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이용희 우리은행 부부장이 꿈꾸던 스마트금융 원년이 됐으면 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