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의료 빅데이터 시대, 패권전쟁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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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정밀의학으로 대변되는 미래의학은 빅데이터에서 시작됩니다. 의료 데이터 패권전쟁이라 불릴 만큼 글로벌 기업은 데이터 확보와 분석에 매달리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경쟁이 아닌 전쟁이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게 아니라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은 현재 의료 시장을 향후 100년 생존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로 표현했다. 차지해야 할 영토는 바로 ‘의료 데이터’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선진 의료IT를 보유한 병원으로 명성이 높다. 올해로 설립 14년째를 맞는 병원은 2013년 이철희 원장 부임 후 완벽한 디지털 의료 시스템 구축이라는 개원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세계 최초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250억원을 투입해 차세대병원정보시스템도 가동했다. 여기에 적용한 의료정보시스템은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병원에 수출하는 쾌거도 이뤘다.

이 원장은 혁신적 의료 서비스 개선은 IT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중심에 빅데이터가 있다. 그는 의료 빅데이터 분야에 선도적 투자를 벌이지만 불안하다. 낡은 규제와 보수적 선입견에 진전이 어렵다. 자칫 미래 의료IT 시장을 외국에 내줄 우려도 나온다.

-데이터는 모든 산업을 통틀어 핵심 자산으로 부각됐다. 의료 산업에서 데이터 의미는 무엇인가.

▲의료 산업에서도 데이터는 잠재적 재산이다. 단 안정적으로 수집되고 최신 분석 작업을 거쳐 의미 있는 데이터가 돼야 한다. 현재 병원마다 엄청난 의료 데이터가 쌓여 있다. 엑스레이,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등 영상 데이터부터 텍스트, 그림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과거에는 이 데이터가 모두 병원 지하실이나 캐비넷에 방치됐다. 통계적으로 분석할 생각도, 여력도 안됐다. IT가 발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의료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솔루션도 나왔다. 수집·분석 빅데이터 솔루션까지 등장했다.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료정보는 금융정보 이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 신체 데이터부터 질병, 진료기록 등 민감한 내용이다. 보험 영역으로 확장하면 금융 데이터만큼 중요하다. 이것을 분석하면 의료 질을 높이는 획기적 모델이 나온다. 공공 보건 측면에서는 국민 질병을 관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의료 분야에 빅데이터를 접목하면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나.

▲우선 의료 서비스 수준을 관리할 수 있다. 많은 병원이 수술 전 환자에게 쓰는 항생제 양을 줄이는 노력을 펼친다. 실시간으로 환자에게 투여하는 항생제 양을 확인해야 하지만 만만치 않다. 또 얼마만큼 줄여야 하는지도 명확치 않다. 환자 개개인에 투여되는 항생제 양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면 줄이는 양을 사전에 파악한다.

의학 교수 임상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병원 전체 배뇨장애 환자를 연구한다고 가정하자. 성별, 나이, 증상 등 다수 조건을 걸면 3~4일은 족히 걸린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갖추면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임상 연구가 활발해지면 환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료 데이터는 다양한 정보를 내포한다. 그중에서도 빅데이터로 활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반적으로 의료 부문에서 데이터는 진료, 질병 기록과 같은 의료 정보, 유전체 정보, 라이프 로그 정보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의료와 유전체 정보는 상대적으로 수집이 용이하다. 하지만 라이프 로그 정보는 이제 막 모으기 시작한 단계다. 개인이 운동을 얼마만큼 하는지, 의사가 처방한 약은 언제 먹는지, 일주일에 술은 얼마만큼 먹는지 등 생활에서 나오는 건강 정보는 수집하기 쉽지 않다. 구글이나 애플 등이 모바일 기기로 수집에 열을 올리는 게 바로 라이프 로그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진료과정에서 알지 못한 병리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생활 패턴 변화를 유도해 진료에 도움도 된다.

라이프 로그 데이터가 중요해지지만 이 역시 의료 데이터의 한 종류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 유전체, 라이프 로그 세 데이터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각 데이터는 저마다 특징을 갖는다. 개인이 가진 질병을 유전적, 환경적 요소로 분석해 처방을 내린다면 이보다 정확한 해결책은 없다.

산업적으로도 세 데이터가 결합돼야 한다. 구글, 애플 등 IT업체는 라이프 로그 데이터를 모은다. 하지만 의료기관이 갖고 있는 의료, 임상 데이터는 모을 수 없다. 같은 이유로 필연적으로 협업이 발생한다. 결국 세 데이터 상관관계를 분석할 때 정밀의학이 시작될 수 있다. 미래 의학으로 평가받는 정밀의학, 맞춤형 의학도 모두 빅데이터 분석이 핵심이다.

-세 의료 데이터 활용을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인터페이스, 즉 분석 소프트웨어(SW)만 있으면 된다. 세 가지 빅데이터를 놓고 연관성을 분석하는 도구다. 이 솔루션 개발은 어렵지 않다.

더 많은 기업과 기관이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과실을 나누려면 플랫폼이 필요하다. 구글과 애플이 스마트폰을 넘어 의료 영역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도 플랫폼을 선점하는 게 목적이다. 플랫폼을 차지하고자 앞다퉈 의료 정보 수집에 나선다. 많은 데이터를 가진 플랫폼은 다양한 서비스와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데이터 전쟁이라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온다.

하나의 거대 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하고 빅데이터 분석 SW까지 올려놓는다. 의료 데이터를 보유한 기관과 기업을 모아 빅데이터 분석,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개발까지 다양한 비즈니스를 구현한다. 이 플랫폼에는 병원뿐만 아니라 유전체 업체, IT 솔루션 업체, 연구기관 모두가 모여 생태계를 구축한다. 정밀의학 리더가 되는 것이다. 결국 플랫폼을 장악하는 사람이 미래의학 승리자다. 많은 기업, 정부, 투자자가 플랫폼 안에 녹아들어야 한다.

-의료 빅데이터 분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의료 데이터 양은 많지만 클린(정제된) 데이터가 적다. 의료 정보 관련 표준화가 더딘 탓이다. 현재 병원 간 진단명 표기가 대부분 다르다. 같은 질병이라도 표기하는 명칭이나 방법이 다르다보니 데이터를 모아도 활용할 수 없다.

의료 정보 활용을 가로막는 개인정보보호법도 문제다. 우리나라 법의 가장 큰 특징은 ‘하지마’식 규제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활용이 아닌 규제에 집중돼 산업이 활성화할 수 없다. 미국은 의료정보 보호가 아닌 활용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마식 규제가 아니라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명문화해 산업 육성에 힘을 쏟는다. 그렇다고 처벌이 약한 것도 아니다. 의료정보 유출과 같은 사고를 저지른 기업은 징벌적 손해배상 등 엄격한 잣대를 내밀어 회사가 망하는 사례도 있다.

-의료 데이터 패권 전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과 전문가는 모바일 헬스, 건강관리 규제 때문에 시장이 안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건강관리는 일부 앱 등으로 가능하지만 질환관리는 전혀 안된다. 민간에서도 투자를 안 한다. 이러는 사이 우리 라이프 로그 데이터 등은 모조리 애플, 구글이 가져간다. 이들은 수집한 데이터는 글로벌 헬스케어 솔루션 업체에 전달해 관련 서비스와 앱을 만든다. 최근에는 이 데이터에 행동심리학을 접목해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까지 개발한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잘 안 먹는 환자 패턴을 분석해 행동 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서비스화한다. 글로벌 업체는 이렇게 앞서가지만 우리나라는 정부 규제에 묶여 제자리걸음이다. 우리나라 미래 의학을 외국에 의존할 위험도 크다.

우리 정부도 규제 개선에 팔을 걷어붙이지만 부족한 게 많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공공 의료데이터 중 일부를 기업이 활용하게 개방한다. 하지만 기업은 심평원 내부 서버를 이용해야만 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실시간 분석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의료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필요한 곳에 실시간으로 접근해 가공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 산업을 향한 보수적 시각도 개선돼야 한다. 수년간 진전이 없는 원격의료도 표면적 이슈는 영리법인이다. 의료시장에도 대기업이 들어와 폭리를 취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원격의료와 영리법인이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영리법인 우려 때문에 원격의료 자체가 도입이 안 되는 것은 문제다. 원격의료를 실시하되 법인 영리화를 막는 방벽을 튼튼하게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제도라는 안전장치가 있다. 이것도 불안하면 제2, 제3 방벽을 세우면 된다. 영리법인 이슈에 막혀 본질적 원격의료 도입이 막힌다면 세계 경쟁에도 뒤지게 된다.

부처 간 산재된 의료 바이오 정책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현재 의료 바이오 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세 부처가 전담한다. 부처마다 성격이 다르다 보니 불만도 나온다. 미래 의료산업은 IT가 중심이다. 핵심 기술 개발은 미래부가 맡고 산업부는 의료기기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초월할 범부처 컨트롤타워 필요성도 제기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과거에도 많은 의료 바이오 산업 육성 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실질적 권한은 없었다. 조직이 힘이 없다보니 변화를 일으킬 동력이 약했다.

이 원장은 마지막으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전했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구슬이 많다. ICT 인프라가 그것이다. 한창 구슬을 보배로 만들어야 할 때지만 구슬을 모으는 작업도 시작하지 못한다. 그는 구슬을 모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의료 데이터 패권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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