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가격 가운데 유류세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유류세제 개편이 있었던 지난 2009년 이래 최고치다. 기름값은 계속 하락하는데 비해 유류세는 거의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원유 가격이 역사적 저점을 지나는데도 소비자 체감효과가 따르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소비자, 주유소 업계 시선은 정부로 쏠린다. 하지만 유가 하락으로 세입이 일부 감소한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유류세제 변화는 쉽지 않다. 한국석유공사는 논란을 의식한 듯 때맞춰 OECD 국가 가운데 한국 유류세 부담이 크지 않다는 보고서를 내며 정부 분위기를 확인시켜 줬다.
23일 주유소 업계, 소비자 단체 등에 따르면 높은 유류세 비중으로 인해 국제 유가 급락 효과가 소비자에 오롯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 현물 시장 기준 보통휘발유 가격은 11월 평균 429.28원으로 올해 최고점을 찍은 6월(571.56원)대비 24.9%가량 하락했다. 이 기간 정유사 제품 공급가격은 624.64원에서 466.16원 25.4% 하락해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 소비자 가격인 주유소 판매 가격을 따지면 가격 인하폭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11월 전국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평균 판가는 1473.58원으로 6월 대비 6.7%가량 내리는 데 그쳤다. 국제 제품 가격이 우리나라 주유소 판가에 반영되는 시차가 2주가량 걸린다고 해도 차이가 크다. 이유는 유류세 때문이다. 지난 15일 기준 전국 저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가는 리터당 1447.82원으로 이 가운데 914.97원이 세금이다. 비중으로는 63%를 차지한다. 지난 현행 유류세율이 결정된 지난 2009년 유류세제 개편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교통·교육·주행세 등 745.89원은 고정돼 있고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 제품가격에 따라 변하는 부가세도 별도로 붙는다. 유류세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석유제품가격이 설령 0원이 된다 해도 리터당 745.89은 무조건 내야 하는 구조다. 유가가 아무리 하락해도 소비자 체감 하락 효과가 줄어든다. 미국은 휘발유 1리터에 부과한 세금이 122원에 불과하다. 우리와 에너지 사정이 비슷한 일본도 596원으로 우리보다 작다. 유류세를 향한 소비자 시선은 점차 따가워진다. 최근엔 주유소 협회가 ‘휘발유 5만원 주유 시 세금은 3만원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만들어 ‘유류세 바로 알리기 운동’을 개시했다. 매출세액공제 대상에서 매출액 10억원 이상 사업자를 제외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이 유류세를 포함한 매출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를 원하는 소비자, 업계 마음은 굴뚝같지만 정부가 유류세제 개편에 나설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지난 2008년 한시적으로 교통세, 주행세를 세 차례에 걸쳐 인하한 전례가 있지만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한 고유가 환경이었다. 당시 소비자 체감 인하 효과도 크지 않다는 비판도 따랐다. 지금은 오히려 원유 가격 하락으로 인한 관·부가세입 축소가 부담이다. LPG, 나프타 제조용 원유 등 관세 인상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최근 석유공사는 ‘휘발유와 경유 세금 체계’ 보고서를 내고 사실상 유류세 개편 당위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휘발유·경유 유류세는 다른 OECD 국가보다 낮은 편이다. 올해 2분기 기준 휘발유 유류세가 리터당 881원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대상 32개국 중 19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경유 유류세는 648원으로 25위 수준이다. 네덜란드, 영국, 터키,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가 높고 미국과 캐나다, 호주가 낮았다. 다만 구매력을 반영하면 한국 소비자 유류세 부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작지 않다고 분석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업계, 언론 등에서 유류세 비중이 높다는 지적을 하지만 최근 기본 관세률 0%인 수입 나프타 까지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가 유류세 조정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면서 “장기적으로 탄소세 등 대체 세원을 도입해 유류세 비중 축소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식의 에너지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