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동의 사이버세상]<24>지식권력으로 부상한 인공지능(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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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을 미루고 자기 능력 밖의 일을 끌어안고 끙끙대는 사람이 직장 상사라면 이는 재앙이다. 일 처리가 미숙하고 부지런하기만 한 상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컴퓨터에 밀려날 수 있다. 인공지능 상사는 사람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신속·정확하게 의사결정을 한다. 방대한 변수를 분석해 적절한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팀원과 감정교류는 전혀 없이 오직 수치만으로 판단한다.

정보처리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컴퓨터가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복합체로 작용한다. 지식 관점에서 보면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가 지식권력이다. 사람이 각종 기기나 설비를 쉽게 운영하고자 개발한 프로그램이 지식 결합물로 재창출돼 오히려 사람을 통제한다. 사람은 디지털 기기에 내장된 프로그램이 어떤 권력을 만들어내는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정한다.

디지털 사회에서 정보시스템은 사회관계에서 질서를 잡고 조직하는 추상적 논리만이 아니라 구체적 힘으로 작용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훈련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현재 확실성으로 바꿔준다. 이를 이용해 사람을 훈련시킨다. 컴퓨터는 인간 보조 수단 역할을 넘어선지 오래고 그 행동 의미를 재구성할 정도가 됐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각·학습·추론능력과 자연언어 이해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이다. 이는 머신러닝(기계학습)과 다음 단계인 딥러닝(심화학습)으로 이뤄진다. 머신러닝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습득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결부시킨다. 딥러닝은 인간 정보처리 방식을 모방해 컴퓨터가 사물을 분별하고 생각하도록 학습시키는 것이다.

지난 10월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2016년 이후의 전망’을 발표하면서 ‘2018년이면 300만명 이상이 로봇상사를 모시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감독업무에 효과적이어서 보다 객관적이고 구조화된 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다. 스마트기기는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으로 이어지고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페이스북은 얼굴인식시스템에 인공지능을 적용한다. 구글은 딥러닝 기법을 발전시켜 수많은 동영상에서 특정 이미지를 정확하게 식별해내는 ‘구글 브레인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사람이 모든 판단 기준을 정해주지 않아도 컴퓨터가 필요한 정보를 인지·추론·판단함으로써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중국 바이두는 구글 브레인 프로젝트 핵심인력을 영입해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애플 ‘시리’, 구글 ‘구글나우’,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와 같은 개인비서형 스마트 에이전트는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로 스스로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고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배운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2014년 3월 LA타임즈는 지진속보를 컴퓨터에 맡겼고 AP통신도 2014년 7월부터 기업실적 등 특정분야 기사를 컴퓨터가 쓰고 있다. 아직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리하는 수준이지만 속도나 정확도에서는 기자를 능가한다.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은 고도 인지기능이 요구되는 분야에까지 활용된다.

IBM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씨티그룹 재무정보 분석서비스, 의료보험회사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이 보유한 임상자료를 이용해 의사(醫師) 지원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대고객서비스에도 투입된다. 인지 컴퓨팅 기술에 바탕을 두고 해당기업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적응·이해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 지식과 가치를 확장시킨다. 고객보다 먼저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 기업이 고객과 소통에서 우위에 서도록 도와준다.

인간 지능은 주변 환경과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한다. 인공지능도 정보처리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초(超)연결성으로 인해 갈수록 영특해진다. 문제는 생물학적 인간지능이 수백만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달해온데 반해 인공지능은 아주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30년대 인간의 뇌가 클라우드에 연결돼 우리 생각과 기억을 백업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2045년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 예측한다.

인간지능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객관적 데이터 분석을 근거로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때를 상정해볼 수 있다. 이미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로봇에 인간 감정을 이입하는 차세대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마지막 창조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viki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