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 한 오피스텔. 문을 두드렸다. 앳된 얼굴의 건장한 남성이 나왔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밴드 가입했다”고 했다. 바구니가 나타났다. 가방·지갑·휴대폰을 담으라고 했다. 검고 길쭉한 것이 온몸을 훑었다. 공항 검색대에서 보던 것이었다. “감시가 심해서…”라고 했다. 재직증명서를 요구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상담을 시작했다. 그는 ‘새 사과 큰 거’를 권했다. 아이폰6S 플러스였다. ‘표인봉’은 20개. 페이백 20만원을 뜻했다. 개통은 나흘 후. 표인봉은 2주 후. 위험했다. 입금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냥 나왔다. 허무했다. ‘이렇게까지 사야하나’ 싶었다.
가는 과정은 더했다. 온라인을 뒤져 ‘내방(來訪)지’ 초성을 구했다. 밴드(카카오톡도 가능)에서 검색해 가입했다. 상담신청서를 써야 했다. ‘공시가로 구매하면 호갱’이라는 문구가 자극적인 신청서였다. 희망 지역·모델·연락처를 적어냈다. 문자가 왔다. 내방지 연락처와 대략 위치였다. 지하철역에 내려 통화했다. 직진하고 무엇이 보이면 우회전하고…
이렇게 찾아갔는데 그냥 나오니 허무할 수밖에.
지난주 기자가 직접 체험했다. 극단적 사례다. 은밀하게 휴대폰을 거래하는 현장이다. 지난해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1년이 지나면서 더욱 은밀해졌다. 단통법을 읽을 수 있는 단면이다.
이동통신업계는 ‘단통법이 정착한 방증’으로 해석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은밀하다는 것은 오히려 단통법이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교통질서가 확립된 곳에서 어쩌다 일어나는 무단횡단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일탈’이라는 의미다.
근거는 번호이동·기기 변경 수치다. 10월 이동통신 가입자 중 기변이 51%였다. 이달 가장 높은 번호이동 수치는 1만8000여건이다. 1만5000건을 밑돈 날도 많다. 번호이동 고객 유치를 위한 보조금 살포가 없었다는 의미다. 오히려 20% 선택약정 요금할인 고객이 급증했다. 정리하면 ‘단통법에 불만을 품은 일부가 일탈을 감행한 것’이었다.
정부는 고민이다. 지난 주 기획재정부를 통해 단통법 개선 의사를 밝혔다. ‘성과를 점검(3월)’하고 ‘제도개선 방안 마련(6월)’을 약속했다. 3년짜리 일몰법 반환점에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방향은 정하지 못했다. 시장점검부터 하기로 했다. 업계와 생각은 같다. 단통법이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효과도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오피스텔과 금속탐지기까지 등장하는 현실을 모른 체 할 수만도 없다.
업계 의견을 듣기로 했다. 21일 휴대폰 유통업계와 오찬을 했다. 업계는 미래창조과학부에 시장활성화, 대·중소기업 상생방안을 건의했다. 지원금 상한을 올리고 이통사 대형매장 출점을 일시 제한해 달라는 것이다. 이동통신유통협회 관계자는 “단통법은 정착했지만 시장활성화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