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개인방송 시대, 경계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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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K-ICT스마트미디어센터 총괄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중간고사 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돌아오는 대답이 굼떠지고 짧아졌다. 더 이상 대화는 불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대답 대신 돌아온 정중한 부탁. “방송 시작해야 하니 방에서 좀 나가주실래요.” 온라인 게임 중계방송을 해야 한단다. 방송국 구경 한 번 못한 철부지 중학생이 말이다.

인터넷 속도 향상과 스트리밍 기술 발달은 ‘개인’이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다수의 상대방에게 전송하는 ‘방송’을 가능하게 했다. 방송법은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전송하는 행위를 방송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법 체계에서 개인방송은 방송이 아니라 부가통신서비스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지만 ‘개인방송’이라는 명명이 크게 어색하지는 않다. 동영상 생산주체와 유통경로는 다르지만 여러 면에서 ‘방송’과 유사한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개인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는 월 이용자 수가 800만명을 넘어섰으며 활동 중인 방송진행자(BJ)만 30만명에 달한다. 포털과 유료방송사도 앞다퉈 개인방송 서비스에 가세하고 있다.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을 키워내듯 온라인상에서 개인창작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MCN)도 활발하다. 이러한 개인방송 확산은 기존 ‘방송’ 개념을 크게 흔들고 있으며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첫째,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다. 기존 방송은 다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적 특성으로 인해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받았다. 방송사라는 전문조직에 소속된 숙련된 전문가만이 제작 주체였다.

그러나 이제 특별한 기술 없이도 누구나 방송이 가능하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사이트는 누구나 손쉽게 불특정 다수 이용자에게 동영상을 노출할 수 있다. 또 기술 발달로 디지털영상과 음향 등에서 상당한 품질 개선이 이루어졌다. 일반인 동영상도 방송국 전문 제작진이 만든 것과 나란히 놓인 채 경쟁하게 된다.

둘째,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 경계다. 기존 방송에서는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제작자와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시청자가 명확히 구분됐다. 퀴즈 풀기나 노래경연과 같은 특별한 때를 제외하면 시청자 제작과정 참여는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그러나 개인방송은 시청자가 아니라 이용자를 상대한다. 이용자는 소파에 기댄 채 졸린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지 않는다. 출연자 말이나 행동에 즉각 댓글로 반응한다. 출연자는 다시 댓글에 응답하면서 함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즉 이용자 소비과정이 콘텐츠 일부가 되는 셈이다.셋째, 콘텐츠와 광고 간 경계다. 정부는 방송, 특히 지상파에 프로그램과 광고를 명확히 구분하도록 하고 프로그램 내 간접광고를 제한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출연자 옷과 모자에 여기저기 테이프를 붙여 상표를 가려야 했다.

그러나 개인방송에서는 특정 상표를 제한 없이 노출할 수 있다. 광고주와 적극적으로 제휴해 더 쉽게 더 많은 제작비 조달이 가능하게 된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제작시스템이 창안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계의 소멸’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다. 이미 이용자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고 있다. ‘1박 2일’이나 ‘무한도전’을 보듯이 먹방이나 게임 동영상을 즐기고 네이버로 공개된 ‘신서유기’의 거침없는 상표 노출을 크게 거북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혹스러워 하는 건 선을 긋고 담을 쌓아 만든 경계 안에서 안주하던 기존 사업자다.

흔들리기 시작한 경계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무너지는 담벼락에 맞서서는 버틸 수 없다. 경계 없는 시장에 맞설 새로운 무기를 찾는 자는 경계 안과 경계 밖, 어디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

박성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K-ICT스마트미디어센터 총괄 sc0314@kc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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