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22>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전 우주인)

Photo Image
고산 대표는 "창업가는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라며 "창업을 하고 싶다면 중소기업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전(前) 우주인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의 인생길은 사연이 많다.

‘한국 첫 우주인 후보’ ‘비운의 우주인’ 같은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늘 그를 따라다닌다. 그가 한국 첫 우주인에 선발되자 국민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호사다마인가. 그는 훈련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우주선 발사 1개월을 앞두고 이소연씨와 교체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는 벤처사업가로 등장했다. 2014년 7월 1일 3D프린터 회사 에이팀벤처스를 창업했다. 인생 4막 시작이다.

고 대표의 인생 1막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으로 출발했다. 2006년 12월 1만8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 첫 우주인에 선발되면서 2막을 열었다. 3막은 청년 창업을 돕는 비영리법인 타이드인스티튜트 창업으로 시작했다.

고 대표를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에이팀벤처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부품조립공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 곳곳에 철재 앵글을 설치해 놓고 그 위에 각종 공구와 테이프, 3D프린터 견본품을 가지런히 배열해 놓았다. 벽 쪽으로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고 대표는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대표실은 따로 없다. 그가 우주인으로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직원 중 한 사람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사무실은 자유분방했다. 고 대표는 운동화와 청바지,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직원 일부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다. 그와 인터뷰는 앵글 옆 긴 탁자에서 한 시간여 진행했다. 그가 직접 탄 냉커피를 내왔다. 대화는 우주인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는 기억 저편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비운의 우주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는데 불편하지 않은가.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 사람은 자의와 타의로 일을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우주인으로 실패했다면 비운의 우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인으로 남았다면 이런 벤처사업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주인에서 교체된 것이 인생의 기회비용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주인 후보로 생활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경험했다. 그런 것이 밑바탕이 돼 인생 4막인 벤처사업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전 우주인이라는 게 내게는 얼마나 든든한 배경인가. 나는 행운의 벤처창업가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훈련은 얼마 동안 받았나.

▲러시아 가가린훈련센터에서 13개월여 훈련을 받았다. 우주선 발사 1개월을 앞두고 2008년 3월 교체됐다. 그곳에서 끝까지 남아 있다가 귀국했다.

-당시 정부는 훈련규정 위반을 교체이유로 발표했는데.

▲당시 언론보도 내용 그대로다. 그 교재는 러시아 친구에게서 빌렸다. 내가 임의로 가지고 나온 게 아니다.

-그게 교체 이유가 되나.

▲한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계약서에 교재 관련 내용이 들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

-당시 충격이 크지 않았나.

▲우주를 향한 꿈이 무산돼 한동안 괴로웠다. 하지만 극복해야지 다른 도리가 없지 않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재직하다 미국으로 왜 유학을 떠났나.

▲러시아에서 귀국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년간 근무했다. 2010년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과학기술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싶었다. 하버드대학 유학 전 실리콘밸리에 있는 싱귤래리티대학에서 10주간 공부했다. 대학 분위기는 도전적이었다. 그곳에서 미래로 가는 길은 과학기술과 혁신주도형 국가라는 점을 절감했다. 하버드대학 겨울방학 때 귀국해 청년 창업을 돕는 비영리법인인 타이드인스티튜트를 설립하고, 이듬해 여름에 귀국해 창업대회를 열었다. 회사 일을 책임지고 제대로 하려다 보니 공부와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휴학했다. 5년여가 지났다. 지금은 제적상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필요해서 배우는 게 더 많다. 뒤늦게 학교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Photo Image
전(前) 우주인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의 인생길은 사연이 많다. 어느 새 세월이 흘러 그는 벤처사업가로 등장했다. 2014년 7월 1일 3D프린터 회사 에이팀벤처스를 창업했다. 인생 4막 시작이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에이팀벤처스를 설립했는데 이유가 뭔가.

▲창업 도우미를 하면서 벤처사업이 내가 바라는 가치를 투영하는 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창업가라고 생각했다. 국가도 초기에는 정책이나 정치가들이 사실상 나라를 창업했다. 지금은 그런 역할을 누가 해야 하는가. 창업가가 해야 한다. 이 정부 어젠다는 창조경제다. 창조경제는 한 시대에 국한한 일이 아니다. 계속해야 할 일이다. 그런 창조경제를 누가 구현하나. 정책 담당자인가. 아니다. 현장에서 혁신을 창조하는 창업가들이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다. 직접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에이팀벤처스는 언제 창업했나.

▲2013년에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팀은 해산했다. 지난해 7월 1일 네 명이 새로 팀을 구성해 출발했다. 지금은 14명으로 인원이 늘었다. 창업을 하면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기업 구성원들이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일은 중요하다. 서로 가치를 공유하다 보니 회사 일이 술술 잘 풀렸다.

-어떤 일을 하나.

▲3D프린터 관련 사업이다. 지금은 3D프린터를 둘러싼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제조업이 디지털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제조업 혁신속도는 날로 빨라진다. 에이팀벤처스는 사람들이 가진 아이디어를 구현해 주는 회사다. 3D프린터는 아직 일반인이나 기업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기업이나 개인이 컴퓨터설계 프로그램을 몰라도 그들이 가진 아이디어를 3D프린터로 구현해 준다. 프린터 공유서비스 플랫폼사업도 한다. 기업이 원하는 제품을 언제 어디서나 파일로 보내주면 제품을 만들어 배송해 준다. 현재 베타테스트 중이다. 모델링 프로그램을 만들어 모델링 대행서비스도 시작한다.

-출시한 3D프린터는 다 팔렸나.

▲지난 5월 고품질 보급형 3D프린터를 출시했다. 지금까지 절반 이상 팔았다. 보급품 3D프린터 중 고객만족도가 가장 높은 게 네덜란드 제품이다. 그 제품을 경쟁 제품 삼아 만들었다. 디자인과 가격이 해외 제품보다 싸고 품질도 우수하다. 제품 판매 사실을 페이스북에만 올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창업 희망자들에게 당부의 말은.

▲창업하고자 하는 분야를 잘 알아야 한다. 사전에 철저한 시장조사를 하고 그 분야를 둘러싼 산업추세도 잘 파악해야 한다. 한 아이템만 보고 창업하는 건 피해야 한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다. 내 경험상 1인 창업은 어려움이 많다. 창업 초기에는 돈과 시간, 사람이 모두 부족하다. 창업자는 1인 3역을 해야 한다. 가령 3명이 동업을 한다면 9명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공동창업을 권한다.

-국내 창업 여건은 충분한가.

▲정부가 창업을 지원하는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금 지원은 효율적이어야 한다. 어느 한 분야 특정업체에 많은 돈을 지원하는 방식을 개선해 다양한 분야의 많은 업체에 적은 금액이라도 지원해 주는 게 좋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어떻게 아나. 아울러 라운드제를 도입했으면 좋겠다. 1라운드에는 소액을 지원하고 일정 기간 그 결과를 본 후 성과를 내면 2라운드에 다시 지원하고 3라운드에 연구개발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확대했으면 한다. 작은 기업에서 정부자금지원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처음부터 어느 기업이 옥이고 돌인지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시장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Photo Image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정부에 바라는 점은.

▲차기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 정권이 바뀌면 현 정부에서 추진하던 정책이나 제도가 모두 없어진다. 정책은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창조경제나 창업, 혁신은 어느 정부에서도 계속해야 할 일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한 창조경제를 비롯해 지역에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긴 안목에서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해야 한다.

-청년층 취업난이 심각한데.

▲청년들이 모두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수요과잉이다. 대기업에 취업하면 정해진 틀 안에서 그 분야만 배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배울 게 많다. 취업 전 자신의 비전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꿈이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 창업을 하고 싶다면 작은 기업, 중소기업에서 경험을 쌓는 게 유리하다. 대기업은 창업에 큰 도움을 못 준다. 창업에 성공한 순위를 보면 첫째가 중소기업 출신이고, 둘째가 대기업 출신이다. 마지막은 무턱대고 창업한 사람이다.

-앞으로 목표는.

▲에이팀벤처스를 제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도전이다. 우주인 후보 시절 미항공우주국(NASA)에 갔더니 ‘달을 향해 쐬라. 설사 달을 비켜 가더라도 우주 어느 별에 도달할 것이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감명 받았다. 늘 도전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운동은 권투와 축구를 좋아한다. 권투는 2004년 전국신인아마추어 대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인생 항로는 과연 몇 막이 종착점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