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라 불리는 신종 감염 바이러스다. 과거 조류독감,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창궐해 국내 축산 농가를 위기로 몰았고,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이렇게 급속히 확산하며 나라 전체에 충격을 준 사례는 근래에 없었다.
10년 전 번역돼 소개됐던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지리학 교수 저서 ‘총, 균, 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고대, 중세와 근대까지 대륙과 종족 간 운명을 바꾼 요소는 과학기술이다. 저자인 다이아몬드는 총으로 대표되는 무기와 쇠로 대표되는 산업기술을 종족과 민족 운명을 가른 요소로 꼽았다. 이러한 기술 개발과 발전의 차이는 결국 대륙 간 주어진 자연 환경과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기인하고 있음도 설명했다.
국내 메르스 창궐 시점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핵심 요소는 바로 균이다. ‘총, 균, 쇠’는 유럽인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진출하고, 이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큰 영향을 미친 요소로 세균을 지적하고 있다.
대규모 도시 속에서 밀집 상태로 가축을 키우며 살던 유럽인은 각종 세균으로 많은 전염병을 겪었고 후에는 항체가 생겼다. 그렇지 않은 타 지역은 유럽인이 가져 온 세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책은 무기나 기계적 운송 수단 등 과학기술보다 오히려 세균에 의한 전염병 확산이 유럽의 남북아메리카 식민지 지배를 보다 쉽게, 또 가속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총과 쇠는 힘의 우열을 가르고 결과적으로 지배와 피지배 역사를 남겼다. 하지만 균은 당시 이유도 모른 채 수 많은 종족을, 피지배를 넘어 멸종까지 이르게 만든 요인이었다. 수백년 전 벌어진 균 이동과 전파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메르스 확산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바이러스 예방과 통제는 잘살고 못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죽는지 사는지는 생존 문제로 바라보고 대처해야 한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