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풍 부는 국내 팹리스 M&A

세계 반도체 시장이 거대 인수합병으로 요동치는 가운데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시장에도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전략적 인수합병에 인색했지만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기 위한 투자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팹리스 시장에 전략적 인수합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규모의 경제로 영세성을 극복해 중장기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마련하는 게 생존과 직결하기 때문이다. 기업 간 합병으로 제품군을 늘리면 영업망이 커지게 되는 것도 장점이다.

미국과 대만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이 빠르게 성장한 중국 추격도 국내 팹리스를 긴장시킨 주요인이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 공세에 밀리면 생존에 직격탄을 맞는다.

실리콘웍스는 올해 초 LG그룹 루셈 시스템반도체 인력과 LG전자 디스플레이용 반도체 사업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 제퍼로직을 인수했다.

제퍼로직은 TV용 LED 구동 IC, 전력반도체 등 제품과 기술을 보유했다. 정부로부터 스타팹리스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은 팹리스 중 하나로 중국 진출에 속도를 내왔다. 실리콘웍스는 지난 4월 1일부로 제퍼로직 인수를 결정하고 인력 대부분을 흡수했다.

코아로직 자회사 나오플러스는 국내 팹리스와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나오플러스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설계하는 팹리스다. 사물인터넷 영향으로 MCU 시장은 성장할 전망이지만 선두 기업 위주로 재편하는 만큼 MCU 기술 경쟁력이 있는 기업 위주로 구도가 바뀌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픽셀플러스는 코아로직 일부 반도체 제품과 관련 설계 인력을 인수했다. 또 아이덴코아 기술과 인력도 확보하는 등 약 55억원을 인수에 투자했다.

픽셀플러스는 상장 후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기업을 대상으로도 인수 기회를 모색할 계획이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무대로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인수합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업계는 모처럼 국내 팹리스 시장에 인수합병이 활기를 띠는 데 긍정적인 분위기다. 수년간 침체한 팹리스 시장이 다시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회사가 새로운 도약을 하려면 전략적으로 매각하는 것도 중요한 데 그 동안 경영권 욕심과 ‘매각=먹튀’라는 잘못된 인식이 형성돼 문제였다”며 “최근 NXP-프리스케일, 아바고-브로드컴 같은 팹리스 기업 대형 인수합병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도 더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세계 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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