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공공SW조달시장 현안 진단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SW)만 떼놓고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국내 SW 시장 규모는 연간 약 11조원에 달한다. 이 중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SW 조달시장 규모는 3조3000억원으로 전체의 30%나 된다. 결코 작지 않은 시장이다. 공공SW 조달시장만 제대로 활성화돼도 우리 SW 산업계 발전의 종잣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럴 만한 여력이 없어 보인다. 국내 공공 SW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과 전문가 반응 등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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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정부 모 공공기관은 지난해 4억원 규모의 ‘교통행정 관리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 과정에서 당초 과업에 없던 하드웨어와 상용SW 등 수백만원 상당의 과업을 추가로 요구했다.

#사례2. 또 다른 공공기관은 22억원 규모의 정보관리시스템 구축 및 개선 사업을 추진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와 기술 협상 과정에서 사업 금액에 포함되지 않은 작업 현장의 내부 인테리어, 부대설비를 사업자 부담으로 추가 설치할 것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두 사례는 국내 공공SW 조달 시장이 왜 활성화될 수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국내 공공SW 조달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발주기관의 전문성 부족이다. 기획설계가 부실하다보니 재작업이 수도 없이 이뤄지고 부당 하도급 문제도 발생한다.

실제로 공공 기관 담당자 대부분은 SW에 전문성이 없어 제안요청서(RFP) 등에 요구 사항을 명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이는 계약 이행 과정에서 부당 요구로 이어진다. 잦은 과업 변경은 기본이고 대가 없는 과업 추가나 추가 인력 투입을 요구하기는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공공기관이 RFP를 비롯해 평가기준 작성, 사업대가 산정 업무를 대가 지급 없이 특정 업체에 의존하는 때가 많다. 이를 악용해 특정 업체는 규격이나 평가 기준을 해당 업체에 유리하게 작성해 불공정 경쟁을 초래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SW산업협회가 201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공SW 사업 수행사 111곳 중 전체의 50%가 RFP가 불명확해 과업이 추가·변경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부실한 사업 기획도 문제다.

정보화사업은 원칙적으로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 이후에 예산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사업기획이 요구사항 명확화, 도입 장비 규격 결정 등에 필수 단계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 발주 사업은 대다수 기획 과정을 세밀하게 거치지 않아 사업 전체 부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드웨어(HW)와 상용SW 통합 발주를 관행화하고 있는 조달 시스템도 SW 제값 주기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동일 사업자에게 상용SW를 납품하면 일종의 하도급 형태가 돼 적정 가격을 보장받기 어렵다. 이는 다단계 하도급 관행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원도급자(또는 상위하도급자)에 의한 대가 인하 요구 등으로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달청, SW 제값 주기 정책 ‘시동’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 조달청은 최근 SW산업 발전을 위해 ‘SW 제값 주기’ 정책을 내놨다. 크게 두 가지 안이다.

가장 먼저 SW사업 발주제도 선진화를 위해 분할 발주 제도를 도입한다.

시설공사처럼 SW사업을 분석설계와 구현 단계로 분리해 발주하는 방식이다. 이는 SW사업 특성상 과업 변경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나, 불명확한 과업 내용서로 인해 추가 과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상반기에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개선할 계획이다.

둘째는 상용SW 분리 발주를 강화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공공기관은 행정 편의 등 이유로 통합 발주를 선호, 분리 발주 실적이 고작 39%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상용SW 업체가 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한 기업 하도급 업체로 전락해 부당한 인력 투입이나 가격 할인 요구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용SW 분리발주 제외 사유에 대한 조달청 사전 검토를 의무화한다. 사업 기간이 지연되는 등 불가피한 사유로 SW를 정보화사업에 끼워넣어 총액 입찰에 부칠 때에는 조달청에 사유서를 제출하고 타당성 검토를 받도록 했다.

또 상용SW 단가 계약 품목 발굴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분리 발주를 활성화한다.

지난해 240개제품 1364개 품목에서 올해는 300개 제품, 1700개 품목으로 늘린다.

변희석 조달청 신기술사업국장은 “내년부터는 일정 규모(30억원) 이상 SW 사업 분석 설계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도록 기재부와 협의해 예산편성 지침에 반영하는 등 SW사업 분할발주를 확대·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W산업 활성화, 범부처 지원 체계 바꿔야 한다

국내 SW 전문가들은 최근 조달청이 내놓은 대책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제 막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조달청만으로는 공공SW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반응이다. 기획재정부와 감사원 등 범 부차 차원의 인식 개선과 총괄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조달청이 계획으로 내놓은 SW 분할발주 사업만 놓고 봐도 그렇다.

SW사업을 분석설계와 구현 단계 2단계 나눠 발주하겠다고 했으나, 예산이 제대로 뒷받침될 지는 미지수다.

기획재정부는 국가 예산을 원칙적으로 연간 1회 편성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기존처럼 통합발주한다고 치면 이 예산법이 맞을 수 있다. 사업 수행자로 선정된 업체가 제시한 예산을 통째로 수주기관에 주면 된다.

그러나 앞으로의 발주 방식은 이와 다르다. 정보화시스템 등 구축 시 예산이 얼마나 들지는 분석 설계를 해 봐야 나온다. 사실상 설계 이후에 정확한 시스템 구축 예산 비용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전에는 시스템 구축 비용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없다.

이 방식을 도입하려면 정부는 발주를 두 번 해야 하고, 예산도 두 번에 걸쳐 수립해야 한다. 현행과 같은 단편 예산 시스템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셈이다. 따라서 조달청이 분할 발주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로 꼽힌다.

SW 분석 설계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인건비도 총액 차원이 아닌 시급제로 계상, 지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선진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기재부는 매년 정부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며 각 부처에서 올린 예산을 어떻게 해서든 삭감하려는 분위기가 짙다. 감사원 또한 매년 정부가 쓴 예산을 부정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보는 때가 많다.

김진형 SW정책연구소장은 “정부가 SW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관행처럼 예산을 깎으려고만 하지 말고 합리적인 예산 절차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재부와 감사원, 조달청 등 범부처 차원의 총괄적인 관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위 : 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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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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