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캣`으로 실력 키우는 중국…세트 넘어 부품·장비로

해외 시장에서 높은 성능으로 인정받은 국내 기업의 인기 제품을 교묘히 복제한 짝퉁 제품을 만들어 저가에 판매하는 중국 기업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부터 완제품이나 부품을 베낀 이른바 ‘짝퉁’은 존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국가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이후 짝퉁의 범위가 반도체 및 관련 장비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전 방위로 확산되는 중국산 짝퉁 제품

2년 전 한경희생활과학은 중국산 짝퉁 제품 때문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에어프라이어의 제조비를 절감하기 위해 중국 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제조를 맡겼다가 그 업체가 한경희 제품과 디자인이 비슷한 복제품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 내놨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한경희 측은 법적 책임을 묻는 ‘채찍’ 대신 ‘당근’에 해당하는 회유책으로 업체를 설득해 모조품 유통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2010년 블루투스 헤드세트 ‘톤플러스’를 출시해 지금까지도 인기를 모이고 있는 LG전자는 지난해부터 중국 시장에서 모조품이 활개 치자 별도팀을 구성해 대응 중이다. 중국 사법기관과 공조하는 방식으로 수습하고 있지만 ‘톤플러스’ 모조품은 중국 시장을 넘어 최근 국내까지 유입돼 유통질서를 흐리고 있다.

LG전자 정품 톤플러스 HBS-800 모델은 시장에서 9만원 이상에 판매되지만 LG전자 브랜드가 생략된 HBS-800 모조품은 현재 직거래 장터에서 2만원대에 버젓이 팔리고 있다. 지난해 단속을 통해 중국 유통업체를 적발, 사법기관에 넘겼지만 그 이후 출시된 최신 제품의 모조품도 여전히 암거래되는 셈이다.

◇반도체 및 장비도 카피캣 대상

수요가 많은 대중인기 제품은 소비자 계도를 통해 구매중단을 유도할 수 있지만 수요가 한정적인 B2B 제품은 짝퉁 제품의 양산 및 소비를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이 십수년간 상당한 공을 들여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한 덕에 해외시장에서도 통하는 기술력 우수 반도체와 관련 장비를 만들고 있지만 최근 이에 무임승차하려는 중국 기업 때문에 시장에서 홍역을 앓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현지 기업이 반도체 칩이나 장비를 제작하고 이를 현지 기업이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내수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단순 짝퉁을 넘어 향후 중국 반도체 국산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셈이어서 위기감이 높다. 제조원가 이하에 판매해도 정부 지원금을 받아 수익을 낼 수 있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도 또 다른 위협 요인이다.

유명 기업의 칩이나 장비를 모방한 중국 제품은 기술적으로 우수하지 않아 당장 실적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짝퉁 제품은 원조 제품보다 가격이 30% 이상 저렴해 공급 협상 시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기술 수준이 낮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받기 힘들어 실제 채택률은 높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중국 짝퉁이 국내 반도체 업계에 날카로운 부메랑이 돼 돌아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터라 짝퉁 제작은 단순 저가품 판매를 넘어 자체 기술력을 빠르게 갖추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대처하기에는 역부족

중국산 짝퉁 제품의 생산 및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없다는 건 큰 문제다. 블루투스 헤드세트 중국산 짝퉁 제품에 대해 LG전자는 대기업이면서 중국 현지 네트워크도 잘 갖춰져 있어 그나마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중소기업은 중국 업체의 불법 행위에 대처할 시간과 비용이 여의치 않다. 또 중소규모인 기업이 각각 대응하기에는 효율성 면이나 효과 면에서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캠핑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해외시장 공략에 성공한 석유난로 전문 업체 파세코도 지난해 중국산 짝퉁 제품에 곤욕을 치렀지만 최종으로 내린 결론은 “짝퉁보다 더 나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건다”였다.

김동철 동운아나텍 대표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데 적극적이다 보니 현지서 특허 소송을 해도 한국 기업이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산 짝퉁 제품에 밀려 한국 기업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홍보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온 중국산 짝퉁 제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근본적 대응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