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인 깨끗한 물과 공기, 식량과 에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얻을 수 있는 자연이 파괴된다면, 제아무리 갑부여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지구는 공동운명체기 때문이다.
의약품을 예로 들어보자. 최근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지맵이라는 약품의 원료는 담배과 식물에서 추출됐다고 한다. 이외에도 세계적으로 7만여종 식물이 의약품에 사용되고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에 대한 연구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만약 이들 식물이 사라진다면 인류의 건강한 삶도 위태로울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약 조류의 8분의 1, 포유류 4분의 1, 양서류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절반가량의 식물종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 이미 야생에서 찾아볼 수 없거나 멸종된 종도 900여종에 이른다. 혹자는 멸종이 자연적 현상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대량 생산과 소비 등 인간 활동에 의해 멸종 속도가 천 배에서 만 배가량 빨라졌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최근 강원도 평창에서 3주간 진행된 생물다양성협약 제12차 당사국총회는 결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인류 생존에 꼭 필요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용하자며 1992년 국제적으로 합의한 생물다양성협약을 잘 이끌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생물다양성을 통해 얻은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기도 했다.
이번 총회 주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생물다양성’이었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생물다양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유엔 총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 목표 설정에 관한 논의에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다.
또 2020년까지 세계 각국이 생물다양성을 위해 추구해야 할 공동 목표인 아이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평가하고, ‘평창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앞으로의 대응 방향을 논하는 자리였다. 전 지구의 생물다양성 현황을 정리하고, 미래 시나리오를 추정한 ‘제4차 지구생물다양성 전망보고서’도 이번 총회에서 발간됐다. 흔히 GMO라 불리는 유전자 변형 유기체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카르타헤나의정서와 유전자원 이용의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나고야의정서 회의 역시 평창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는 협약 당사국인 193국 대표와 관계자 2만여명이 참석했다. 또 각 정부 장관급 인사들이 고위급회의에 참석해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호소하는 ‘강원선언문’을 발표했다.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강원선언문 초안을 마련했고, 여러 부처에서 생물다양성을 위한 다양한 국제 협력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는 세계 생물다양성 논의에 기여하면서, 국제적 입지를 한층 다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이 생물다양성과 떼놓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중요한 성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측 대표단을 이번 회의에 초청하며 ‘환경 공동체 형성의 길’을 제안하기도 했다.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은 곧 우리 모두를 지키는 길이다.
수십 년 안에 90억명이 될 세계 인구가 함께 살기 위한 해법은 하늘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결국 기댈 곳은 자연이다. 평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이곳에 모이는 이들을 응원하고 또 관심 있게 지켜보자. 21세기 지구촌을 살아가는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다.
이현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실장 hwlee@ke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