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35>로그

15세기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하며 남긴 여행 이야기는 유럽인들에게 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줬다. 특히 로그북(logbook)이라 불리는 항해 일지는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범위만을 이동하며 살던 당시 사람들에게 시공간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생하게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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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항해 일지의 페이지

1492~1493년에 기록된 콜럼부스의 ‘여행기(Diario)’는 대표적인 로그북으로 간주된다. 신대륙 담론 연구자인 매리 풀러(Mary Fuller)에 따르면, 로그북은 다음과 같이 구성됐다.

“페이지는 줄로 나뉘며 각 란에는 날짜, 시간, 나침반 방위각, 풍속, 항속 등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짧은 기록들이 담긴다. 즉 항해 일지는 날짜와 위치에 맞춰 해당 내용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풀러와 디지털 연구자인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한 대담에서 이런 신대륙 이야기가 컴퓨터 게임의 공간 이동과 매우 유사하다고 결론짓는다. 이는 신대륙 탐험이나 컴퓨터 게임을 포함한 가상공간에서의 움직임이 기본적으로 시공간 이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즉 탐험가든 게이머든 이들의 시간적, 공간적 위치가 기록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이용 내역은 로그 파일에 기록된다. 이것은 항해 일지와 마찬가지로 시간, 위치, 활동 내역으로 구성된다. 컴퓨터 활용 관습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는 이용자의 로그 파일을 수집해 이용자의 행태를 분석한다. 고정형 미디어인 데스크톱 컴퓨터의 로그가 가상공간 내에서의 위치 이동만을 보여준다면, 모바일 미디어인 스마트폰 로그 파일은 GPS를 활용해 가상공간은 물론이고 실제 공간의 이동 내역까지도 알려준다.

이용자의 로그는 상업적 목적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용자의 시간과 위치 그리고 활동 내역을 알면 그것에 맞춰 광고나 마케팅을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로그 정보 자체가 상품이 된다. 근대까지만 해도 지도가 적대국은 물론 일반인에 전해지지 않도록 일급비밀로 유지되었던 것도 정보의 가치 때문이었다.

신대륙 탐험가들은 신대륙에서 발견하게 될지 모를 금은보화를 자신만이 다시 찾아가기 위해 일지를 가짜와 진짜 두 버전으로 작성했다. 심지어 같이 항해를 하는 선원까지도 속였다. 그러나 현대의 모바일 미디어는 거짓을 기록할 수 없다. 현대 모바일 미디어는 인간이 노력을 기울여 기록해야 했던 항해 일지와 달리 자동으로 위치를 센싱하여 기록으로 남긴다. 이런 점에서 삭제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조작하거나 수정할 수 없는 로그 파일은 매우 중요한 프라이버시 정보가 된다.

시공간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로그 파일은 이제 스마트폰 앱으로 개발돼 실생활에도 활용된다. 무브즈( Moves)라는 앱은 이용자가 이동하는 궤적을 측정함은 물론 이동 속도까지 고려해 걸었는지 교통수단을 이용했는지까지 기록해 알려주고 하루 단위로 이동 경로를 지도에 표시해준다. 나이키 플러스는 이용자의 조깅 경로를 추적해 거리와 칼로리 소모량을 알려준다. 최근 다양한 헬스 케어 앱과 웨어러블 기기는 기본적으로 시간, 공간, 활동이라는 항해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한다.

이런 정보는 지도나 항해 못지않은 귀중한 정보이면서 또한 민감한 프라이버시 정보인데, SNS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기도 한다. 사실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와 같은 SNS에 올리는 포스트를 보면 굳이 위치추적 앱을 쓰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시공간적 궤적을 재구성할 수 있다.

시공간 움직임을 추적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은 역사를 이어오며 공명하고 있는데, 가짜 항해 일지까지 작성하며 정보를 감추려는 욕망은 이제 사라지고 있는 것인가?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