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세종 정부청사를 잇는 영상회의시스템이 문을 연 지 1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켜지지 않았다.
첨단 장비를 마련해놓고도 썩히면서 아까운 세금이 줄줄 새는 사례다. 더 큰 손실은 국가 주요 정책을 마련해야 할 고위 공무원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여의도까지 300㎞를 왕복하면서 행정 공백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는 세종 청사 기획재정부와 연결된 영상회의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두 회의실 모두 넉 대의 대형 모니터를 비롯해 화려한 영상 장비를 도입했다. 의원이 질의하면 필요한 도표나 통계자료 등의 문서도 전송과 표출이 가능한 수준이다. 혹시 영상회의가 끊길까봐 전용회선까지 깔았다. 장비 가격은 4000만원을 웃돌았고 전용회선 비용은 매월 323만원씩 낸다.
지난해 8월 개통식에서 여야 의원들은 “행정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말뿐이었다. 영상회의시스템은 시연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국회사무처 담당자는 “기재위 의원실에서 영상회의를 요청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며 “당초 다른 상임위로 확대도 고려했지만 실적이 없어 예산도 추가 편성돼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정진석 국회사무처 사무총장은 “영상회의시스템이 세종시 이전부처 공무원의 잦은 국회 출장에 따른 경비 소요와 시간 낭비, 업무공백 등의 대안으로 제시된 만큼 행정비효율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지만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세종시 공무원은 지난해 예산 결산의 매듭에 장관 청문회까지 겹쳐 여의도 출장이 잦다. 9월 예산 심의 기간에는 얼마나 더 길거리에 시간을 뿌려야 할지 막막하다. 세종시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9월부터 내년도 예산 설명 국회가 시작하는 데다 10월 정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 자료 요구에 응해야 해 여의도 출장이 더욱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로 인한 서울 출장이 늘면서 세종시 공무원들은 잦은 출장으로 인한 경비 낭비와 시간소요, 그에 따른 업무 공백,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다른 정부부처 과장은 “오전에 세종시에서 회의하고 오후에 자료전달과 설명을 하기 위해 국회에 들리면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된다”고 하소연했다.
무용지물인 영상회의시스템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지만 가능성은 낮다. 국회의 고압적 자세 탓이다. 국회 눈치를 봐야 하는 공무원이 먼저 영상으로 회의하자고 말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국회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대면 보고만 고집한다.
영상회의시스템 효율은 행정부에서 이미 검증됐다. 세종시 각 부처에 한 곳씩 설치돼 서울청사를 잇는 20명 이상이 참석하는 대형 영상회의는 매일같이 열린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세종시와 서울청사 간 영상회의는 1만2480회에 달했다. 지난해 전체 1만3452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부처 간 영상회의 증가는 지속적 교육과 가이드라인 제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안행부 스마트서비스과 담당자는 “지난해 상반기 영상회의시스템 이용이 활성화되지 않아 하반기부터는 특정 회의를 영상으로 하도록 지정해 평가에 반영한 것이 한몫했다”고 평가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세종=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