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시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방송·통신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개정안에 따라 주민등록번호를 생년월일 등 별도 수단으로 대체하면 본인인증이 반드시 필요한 자동이체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요금 연체자에 대한 채권 추심이 중단돼 대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최근 ‘민감정보 및 고유식별정보 처리 근거 마련을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 일부개정령’을 입법예고하고 개정안에 의견을 가진 기간, 단체, 개인에 게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권고하는 공고문(제2014-199호)을 게재했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안행부가 발표한 개정안은 공공기관과 관련된 사항은 대다수 반영됐지만 방송·통신 업계가 요청한 주민등록번호 처리 근거 마련 조항은 제외됐다”며 “안행부는 약관에 따른 업무는 사적 계약 영역이기 때문에 시행령을 개정하기 어렵고, 요금 부과·징수·감면 등은 후불제사업자의 공통 사항이기 때문에 방송·통신사업자 의견을 특별히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방송·통신 업계는 주민등록번호를 처리할 수 있는 근거 조항 없이 개인정보보호법이 오는 8월 7일 발효되면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입자 본인을 확인하기 어려워 명의도용 등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채권 추심과 금융 서비스가 동시에 중단돼 사업자는 물론이고 고객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금융권에서 은행·카드 거래 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어 개정안이 그대로 발효되면 자동이체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다”며 “금융결제원이 오는 8월부터 성명, 계좌·카드번호 등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하고 있지만 동일한 생년월일을 가진 고객을 오처리 할 수 있어 큰 불편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방송·통신 업계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시행하기 전에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법 개정에 따라 사업자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했던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따른 온라인상 주민번호수집·이용금지’는 사업자에게 논의·계도 기간이 주어졌다”고 강조하며 “이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주민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사업자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협의해 근시일내 미래부 담당자, 플랫폼 사업자, 변호사 등이 함께 안행부를 방문해 근거 조항 마련을 요청할 계획이다.
미래부는 지난 4월 안행부에 방송통신사업자의 주민등록번호 처리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자료를 제출한 바 있다. 향후 발생할 우려가 큰 결제 대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법제처가 “주민번호 사용은 과금업무에 한정돼야 한다”고 해석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국민의 정보를 지키겠다는 정부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정부와 사업자가 모두 충분한 준비 없이 개정안이 발효되면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과징금, 과태료, 면제, 유예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