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과 시진핑 주석의 밀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다. 이재용 체제가 연착륙하려면 무엇보다 중국 시장이 중요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부터 중앙당교 중청반 회원들을 국내로 초청하는 등 차기 중국 지도부와의 ‘관시(인맥)’ 구축에 힘써 왔다. 지난 2005년에는 당시 저장성 당서기였던 시 주석을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후진타오를 이을 차기 중국 지도자로 유력한 상황이었다.
시 주석은 이미 10년 전 자신이 만들어 갈 새로운 중국의 청사진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는 기존 굴뚝 산업에서 벗어나 산업 고도화를 이뤄야 한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다. 삼성전자는 시 주석의 야심을 파악했고, 이를 적극 공략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시진핑 주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물’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재용 사장과 시진핑 부주석의 면담 자리를 성사시켰다. 이후 두 사람은 보아오포럼 등 행사장에서 여러 차례 면담하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통큰 투자를 단행하면서 시진핑을 웃게 만들었다. 삼성은 해외 디스플레이 업체로는 처음 쑤저우에 LCD 팹을 건설했다. 후공정과 달리 LCD 전공정 팹은 상당한 기술 유출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진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끼지 않았다. 얼마 후 삼성전자는 시안에 10나노대 낸드플래시 반도체 팹까지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사실상 중국에 히든카드까지 내줬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안은 당초 베이징·충칭·쑤저우·선전과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를 두고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였다. 시안은 모든 면에서 중국 내 경쟁 도시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예상을 깨고 시안을 반도체 공장 입지로 낙점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삼성전자 시안 팹을 놓고 이재용 부회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주는 즉위 선물이라는 분석이 파다했다. 삼성전자 시안 팹 투자를 계기로 중국 지도층은 이재용 부회장을 한국의 재벌 후계자가 아닌 거물 파트너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이 ‘산시수두(陝西速度)’라는 신조어를 붙일 정도로 삼성전자 시안 팹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시안 팹 설립 신청 후 법인 설립증을 받는데 걸린 시간은 88일에 불과했다. 중앙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안임을 감안하면 이처럼 행정 절차가 빨리 마무리된 것은 이례적이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서부 지역에 진출한 것은 시안 반도체 팹이 처음”이라며 “우리나라와 오가는 항공편도 많이 없고 뱃길을 이용할 항구도 없는데, 참 이상한 투자 결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시안 팹 설립에 시진핑 등 차기 중국 지도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25명 중 시진핑 주석과 왕치산 당기율위서기 등을 비롯한 6명이 시안을 비롯한 산시성 출신이다. 시장에서 삼성전자 시안 투자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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