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느 수도권 대학의 세미나에 참석해 주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대학은 인재 만드는 공장인가’라는 주제로 100여명의 교수들에게 대학의 고객은 누구인지 질문을 던졌다. 절반 이상이 대학의 고객은 학부모 또는 학생이라고 답했다.
대학이 인재를 만드는 곳이라면 당연히 훌륭한 인재들이 가는 기업이 대학의 고객이 돼야 하는 게 아닐까. 세미나 뒤풀이 시간에 일부 교수들로부터 ‘상아탑’을 모독하는 발언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이 고객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정의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훌륭한 인재 비전은 아득해진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기업들은 제품의 품질에 목숨을 건다. 출하된 제품이 고객으로부터 불만이 발생하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원인과 대책은 말할 것도 없고,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어 제출하고 책임자가 고객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말 그대로 ‘죄인’이다. 물론 AS(After Service)는 기본이다.
그러나 대학은 기업들에 졸업생들의 품질을 묻거나 AS하려고 진지하게 다가온 적이 없다. 대학의 역할이 보다 적극적으로 변해야 할 때라고 본다.
1990년대 소재부품 분야에 글로벌 소싱 전략이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대기업들이 대부분의 소재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 와 조립했다. 정부 정책도 그러한 분위기에 박자를 맞추던 시절이다. 이러한 분위기와 전략 탓에 안타깝게도 그 당시 그나마 존재하던 소재분야의 풀뿌리 경쟁력이 송두리째 뽑히고 말았다.
반면에 일본의 소재부품 기업들은 작은 중소 공업사 수준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된 기업도 많아졌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고 10년 넘게 난리법석이다. 하지만 몇 배의 비용을 치르고도 성공을 보장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재 분야 인재들의 리모델링이 시급하다. 다른 공학 분야보다 소재 분야는 인재 양성에 10년 이상이 걸리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부족한 재원으로 곶감 빼먹듯 인재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중소·중견 소재부품 기업들은 금세 그 경쟁력이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즉 자체 교육여건이 좋고 채용환경이 월등히 좋은 대기업들과 달리 중소·중견기업은 인재 활용이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업 환경에 적응하려는 핵심 엔지니어들의 재교육을 위해 대학이 주도적 역할을 맡는 것이 소재부품 부문 경쟁력의 또 다른 핵심이다. 중소·중견 제조 부문 핵심인재들의 재교육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인적 교류는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필수 환경이다.
젊은이들의 인재 양성 못지않게, 기존 인력들의 재교육을 활성화해 인적 자산의 ‘리모델링’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이는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핵심요소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산업 현장의 엔지니어, 연구원들의 사기가 가장 큰 문제다. 엘리트 스포츠 산업으로 배출된 영재 스포츠맨들은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팔자 편다는 얘기가 있다. 반면에 각고의 노력 끝에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 1등 제품, 1등 기술을 만들어 한 해에 수백, 수천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가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해도 기술자들에게 돌아오는 건 별로 없다.
정부가 직접 나서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한 창의적인 인재들을 발굴해 크게 포상하고,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훌륭한 엔지니어와 연구원들은 오랜 기간의 연마를 거쳐 양성된다. 그렇게 양성된 우수 인재들은 특정 조직의 재산만이 아니다. 국가의 소중한 재산이다. 그들이 소신껏 창의를 발휘하고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도록 고민하는 것이 창조경제를 자리 잡게 하는 핵심임을 지금이라도 정부가 깨닫기 바란다. 대한민국이 진정 소재부품 산업 강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정인범 창성 부사장 ibjeong@cha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