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당신의 손안에.’
김대중정부가 내건 전자정부 슬로건이다. 전자정부가 본격 추진된 것은 2001년부터다. 그전까지는 구호만 요란했다. 당연히 성과도 없었다.
“2003년까지 전자정부를 완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전자정부가 국민의 정부 국정 어젠다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지식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전통산업과 정보통신산업, 생물산업을 삼위일체(三位一體)로 발전시켜 새로운 경제 도약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면서 “2003년까지 전자정부를 완성하면 우리는 세계에서 막강한 지식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올해 국정의 5대 지표를 △민주 인권국가 구현 △국민 대화합 실현 △지식경제강국 구축 △중산층과 서민 보호 △남북 평화협력 실현으로 정했다”면서 “이를 국민과 같이 착실히 실천해 영광의 한 해를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시대에 한 번 뒤처지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민이 정보기술을 습득해 정보화사회 속으로 들어가자고 독려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지식과 정보가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역설했다. 이런 나의 성화와 계속되는 정보화 정책 점검에 일부 불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해 1월 11일 오전 11시.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내외신 기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두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 각료가 배석한 이날 김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김 대통령은 모두(冒頭) 발언에 이어 정치·외교·경제 등 각 분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도 전자정부 완성 의지를 거듭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임기 중에 정보화 확산의 핵심인 전자정부를 완성하고 정부와 공기업과 민간 부문이 모두 전자상거래를 상시 실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신년사와 연두 기자회견에서 거듭 임기 내 전자정부 완성의지를 표명하자 각 부처는 비상이 걸렸다.
그해 1월 19일 오전 정부중앙청사 기자실.
이한동 국무총리(현 포천장학회장)는 새해 추진할 전자정부 구현 등 2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 총리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 전자상거래를 중앙정부, 지자체, 공기업 등으로 확대해 올해부터 물품 2억원, 시설공사 78억원 이하도 전자입찰제를 전면 실시하고 전자지불, 전자인증제 등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1월 30일.
정부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혁신추진위원회(위원장 조창현 한양대 교수)는 이날 기획예산처 대회의실에서 제5차 회의를 열고 전자정부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처 간 이견 조정을 위해 민관 합동의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산하기구로 구성했다.
위원장은 정부혁신추진위원인 안문석 고려대 교수(고려대 부총장,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장, 현 고려대 명예교수, 정부3.0 자문단장)를 선임했다.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출범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자정부를 김대중정부의 정책 어젠다로 추진한 사람은 김성재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청와대 민정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역임, 현 김대중도서관장)이었다.
김성재 당시 수석의 증언.
“김대중 대통령은 전자정부를 수차례 강조하셨는데 성과가 전혀 없었습니다. 민정수석실에서 청와대 업무점검을 해보니 전자정부는 정책기획수석실 소관 업무였습니다. 당시 김한길 정책수석(문화관광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대표)에게 부진한 이유를 물었더니 “내용을 잘 몰라서 업무를 경제수석실로 넘겼다”고 했습니다. 이기호 경제수석(보건복지부·노동부 장관 역임)에게 물었더니 “업무가 많아 챙기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책기획수석이 전자정부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정책기획수석이 전자정부 업무를 넘겨받았으나 추진체계나 기구가 없었다.
정책기획실 소관부처는 기획예산처뿐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기획예산처에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부혁신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공기업 등의 공공 부문 혁신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2000년 12월 어느 날.
김대중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조창현 정부혁신추진위원장(중앙인사위원장 역임, 현 한양대 석좌교수)과 안문석 점검평가특별위원장,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청와대 비서실장, 감사원장 역임, 현 가천대 석좌교수), 김성재 정책기획수석 4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 위원장으로부터 각 부처와 정부투자기관의 개혁 성과를 점검한 결과를 보고받았다. 김 수석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전자정부특별위원회 구성건을 보고해 재가(裁可)를 받았다.
이와 관련한 김 정책기획수석의 말.
“고심 끝에 다른 대안이 없어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산하기구로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경제수석실에서 전자정부를 다시 맡겠다고 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배경을 알아보니 정보통신부를 정책기획수석실 산하로 이관할까 염려해서였습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공무원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는 버릇은 여전했습니다.”
안문석 위원장의 증언.
“처음 위원장을 맡으라고 할 때 거절했습니다. 맡고 있던 점검평가특별위원장 업무도 벅찼어요. 제가 고사하니까 청와대에서 위원장 적임자를 몇 군데서 추천받았는데 제가 ‘공통분모로 들어갔다’면서 강력히 요청해 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민간인 특위 위원장 아래 위원은 관계부처 차관 및 민간전문가 15명으로 구성했다.
정부위원으로는 김진표 재정경제부 차관(부총리 역임, 현 민주당 의원), 최희선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중부대 총장 역임), 정영식 행정자치부 차관, 김병일 기획예산처 차관(현 한국국학진흥원장), 김동선 정보통신부 차관(TTA 이사장), 이경호 보건복지부 차관(현 한국제약협회장), 김송자 노동부 차관(17대 국회의원 역임), 맹정주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강남구청장 역임), 이필곤 서울시 행정1부시장(현 알티캐스트 회장)이 민간위원은 김성태 성균관대 교수(한국정보화진흥원장 역임), 서삼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작고, 한국전산원장 역임), 송희준 이화여대 교수(현 ICT대연합 운영위원장), 윤영민 한양대 교수, 윤창번 KISDI 원장(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황성돈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간사는 김영주 청와대 정책기획조정비서관(산업자원부 장관 역임)이 맡았다.
김성재 정책기획수석은 “특위는 형식적으로는 정부혁신위원에 속하지만 실질적으로 독립적 운영이 보장되며 대통령께 직접 보고하는 체제로 운영됐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김 정책기획수석은 안문석 위원장의 요청으로 특위위원이 아닌데도 전자정부특위 회의에 참석해 추진 과정의 애로사항이나 부처 간 갈등을 즉시 해결했다.
그는 전자정부 업무를 김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청와대 비서관이 위원회 간사로 참여한 일도 극히 이례적이었다.
김 정책기획수석은 김영주 비서관에게 “당신은 전자정부 일만 해라. 다른 일 안 해도 좋다”고 지시했다고 회고했다.
김 정책기획수석은 ‘정부를 당신의 손안에’라는 전자정부 슬로건도 직접 만들었다. 김 대통령은 슬로건을 보고받고 “아주 좋은 슬로건”이라며 김 수석을 격찬했다.
전자정부특위 조직은 위원회와 실무지원단과 실무작업반으로 구성했다.
안 위원장의 말.
“인적 구성도 엄격하게 했습니다. 전자정부를 추진하려면 기술지원은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맡고 정책지원은 청와대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무지원단장도 공동으로 맡도록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전자정부특위 활동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민간위원회지만 파워가 대단했습니다.”
지원단장은 서삼영 원장과 김영주 청와대 정책기획조정비서관이 공동으로 맡았다.
단원은 김병기 재정경제부 국고국장(현 서울보증보험 사장), 김정기 교육인적자원부 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현 위덕대 총장), 정국환 행정자치부 행정정보화계획관(전자정부본부장 역임), 이영근 기획예산처 행정개혁단장(국민권익위 부위원장 역임), 김동수 정통부 정보기반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윤경태 보건복지부 연금보험국장, 노민기 노동부 고용총괄심의관(현 한국폴리텍Ⅱ 학장), 이권상 중앙인사위 인사관리심의관(부산시 행정부시장 역임), 이재만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대전지방국세청장 역임), 이공재 조달청 물자비축국장, 박재문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현 미래부 연구개발정책실장), 위금숙 기획예산처 전문위원(위기관리연구소 소장), 그리고 민간전문가로 오광석 한국전산원 정보화지원단장(현 연구위원), 손연기 숭실대 교수(현 서울시립대 교수), 유평준 연세대 교수, 이석한 쓰리소프트 대표, 신형식 LG CNS 수석, 이용효 한국교육학술원 실장, 최준옥 조세연구원 박사, 황주성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팀장(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등으로 구성했다.
이외에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임시작업반으로 점검조정팀과 상호운용성팀, PM협의회, 법령정비팀, 이용활성화추진팀 등을 운영했다.
전자정부 특위는 구성됐지만 사무실을 마련하지 못해 첫 회의는 서삼영 원장실에서 열었다. 서 원장은 그해 5월 21일 한국전산원장에 선임됐다. 그의 원장 선임에는 안문석 위원장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조직 구성을 마친 전자정부특위는 김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 아래 국정 어젠다인 전자정부 구현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