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아세안-①글로벌 제조업 `축의 이동`, 중국에서 아세안(ASEAN)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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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스마트폰·태블릿PC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베트남 제2 공장이 본격 가동된다. 삼성전자는 제2 베트남 공장 생산 인력 4만명을 추가 고용할 계획이다. 한적한 시골 도시가 모여 있던 타이응웬성은 삼성전자 덕분에 조만간 젊은이들로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과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베트남 제1 공장 옌퐁에서 3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직접 고용 인원만 7만명이 넘는다. 삼성전자를 따라 베트남에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 50여개에서 고용하는 인력까지 합하면 12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스마트폰 생산량을 늘리면서 지난 2012년 베트남 전체 수출 비중의 10%를 넘어섰다. 작년에는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0%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 덕분에 베트남 주력 수출품은 스마트폰이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쌀과 커피를 주로 수출했던 베트남은 이제 최첨단 스마트폰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 뿐 아니라 주변 도시까지 삼성전자의 푸른색 로고가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삼성전자에 취업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국민 기업이 됐다는 일부 평가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서로 힘을 합쳐 3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 관계는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 기업들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중국에 이은 생산 거점으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잇따라 단행하고 있다. 향후 미얀마·캄보디아 등 개발 수준이 낮은 아세안 국가에서도 베트남 같은 제조업 혁신 성공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아세안은 위안화 가치 상승, 임금 인상 등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약해진 중국을 대체할 `세계의 공장`으로 새롭게 부상했다. 전자부품 조립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아세안은 이미 중국을 넘어서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IT·자동차 업체들도 아세안 국가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있다.

잘 살아 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찬 6억4000만명의 아세안 국민들은 제조업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15~29세 젊은 연령층이 전체 인구의 27%를 차지할 정도로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이 넘쳐난다. 아세안 지역 내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젊은 노동자들은 향후 한국산 스마트폰·TV를 구매할 주소비층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과 일본도 아세안을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삼고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제는 중국 대륙이 아닌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한중일 제조업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신문 신년 대기획 `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 아세안편에서는 베트남·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미얀마·말레이시아 주요 6개국의 제조업 발전상을 전한다. 제조업으로 도약을 노리는 아세안 각국의 전략이 세계 산업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한중일 3국간 `총성없는 제조업 전쟁`에서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 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아세안 경제 공동체 통합 가속, 21세기 세계 산업 지형도 바꾼다

아세안이 창설된 것은 지난 1967년이다.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 5개국이 발족했고 이후 베트남·미얀마·브루나이·라오스·캄보디아가 가입하면서 10개국이 됐다.

당초 경제 협력보다는 역내 안보 협의체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1990년대 전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경제 협력을 위한 역할이 커졌다. 냉전체제 종식 이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불어온 탓이다. 경제 협력에 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지난 1993년 태국의 제안으로 아세안 10개국 자유무역협정 아프타(AFTA)가 만들어졌다. AFTA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최소화하고, 외국인 투자 확대를 목표로 설립됐다.

아세안 10개국은 내년까지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설립을 목표로 지역 통합에 집중하고 있다. AEC는 △단일 시장과 생산 기반 △경쟁력 경제 지역 △균등한 경제 발전 △글로벌 경제에 완전 통합 등을 목표로 한다.

아세안은 뒤늦게 가입한 베트남·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 4개국을 제외하고 지난 2010년부터 역내 관세를 0~5%로 낮췄다. 나머지 4개국도 오는 2015년까지는 모든 품목에 대한 역내 관세를 0~5%로 내릴 계획이다. 우리 제조 기업들이 아세안 내 생산 거점을 활용해 세계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세안 회원국들은 아세안 차원의 포괄적 자유무역협정(FTA)뿐 아니라 개별 국가 차원의 양자적·다자적 협약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아세안 국가들의 FTA 움직임은 우리나라 수출 시장 전략에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산업 불모의 땅, `제조업의 봄`을 맞다

지난 1990년대 말 이후 중국 내 평균 임금은 매년 10%를 상회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저임금 노동력 활용을 위해 진출한 제조 업체들이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고, 지금은 첨단 제조 업체조차 중국에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금 상승 못지않게 인력 수급도 큰 문제다. 중국에 제조 시설을 보유한 업체 중 대다수는 인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내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은 지난 2010년 이후 매년 급락하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는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경향도 무척 강해졌다. 지금은 중국 기업조차 중국을 대체할 생산 거점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경쟁력위원회와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가 공동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 상위 20개국에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아세안 5개국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향후 5년간 경쟁력 순위가 가파른 속도로 상승할 것으로 관측됐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뜻하는 브릭스(BRICs) 국가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임금도 단기간에 너무 올라 투자 매력을 잃었다. 중국을 제외한 브릭스 국가는 최근 성장세 둔화와 정부 부채 증가로 위기설까지 대두되고 있다.

반면 아세안 국가는 저임금 노동력, 역내 시장 확대 덕분에 매력적인 대체 투자처로 떠올랐다. 최근 아세안에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몰려드는 이유다. 아세안 회원국에 대한 FDI 규모는 지난 2009년 474억달러에서 2011년 1165억달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이미 2011년 중국 내 FDI 규모(1240억달러)에 육박했다.

최근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엠씨넥스의 민동욱 사장은 “아세안에 투입된 FDI는 대부분 제조업에 쏠려 있다”며 “한국·일본·대만·중국 등 아시아 선진 제조 업체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젊은이가 주도한다, 아세안의 치명적 매력

중국 내 최저 임금이 급속도로 오르고, 위안화 가치까지 절상되면서 아세안과 중국의 임금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중국 노동자는 인도네시아 노동자에 비해 지난 2005년 2배, 2010년 3배나 많은 임금을 각각 받았다. 2015년에는 격차가 4.5배로 벌어질 전망이다.

젊은 노동자 비중이 높은 것은 아세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인구 비중 추이를 보면 중국처럼 생산 연령 인구(15~64세)가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도 적다. UN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합계 출산율은 각각 2.1명, 3.1명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은 1.6명에 불과했다. 베트남은 합계 출산율이 1.7명에 불과하지만, 평균 연령이 28.2세에 불과할 정도로 젊은 인력이 풍부하다.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등의 주요 아세안 국가는 문맹률이 7~8% 수준으로 낮고, 노동 근면성과 높은 학력도 장점으로 꼽힌다.

아세안 10개국의 생산 연령 인구 비중은 오는 2025년까지 꾸준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인구수도 현재 6억명에서 수준에서 2025년 7억명, 2050년에는 8억명으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오는 2050년에는 세계 인구 가운데 12.8%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 연령 인구가 나머지 인구의 2배를 넘는 `인구 보너스기`도 향후 30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추산이다.

더욱이 아세안 국가들은 세제 혜택, 부지 지원 등을 제공하면서 제조업 투자 환경 개선에 적극 힘쓰고 있다. 지난해 세계은행이 매긴 사업 환경 순위에서 태국은 18위에 올랐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99위와 128위를 기록했다. 브릭스 가운데 중국이 91위로 순위가 가장 높았고, 러시아 112위, 브라질 130위, 인도 132위를 각각 차지했다.

◇아세안 안정적인 경제 성장…우리 핵심 수출 시장으로

아세안은 지난 1997년 외환 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회복세를 타고 있다. 금융 위기 때는 오히려 안정적인 성장세로 달라진 경제 체질을 자랑했다. 아세안 10개국은 6억4000만명에 이르는 인구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금융위기 이후 연평균 5~6%의 성장을 실현했다.

아세안은 우리나라 교역 파트너로서의 역할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위기 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일본·유럽 시장의 수출 축소 영향을 상쇄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와 아세안과의 교역액은 지난 2012년 1300억달러를 돌파했다. 아세안은 중국 다음가는 최대 교역권으로 부상했다.

◇ 취약한 인프라, 사회 안정…아세안 국가들이 해결해야 할 난제

아세안이 중국을 대체할 세계 공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아세안 국가 대부분은 도로·전력 등 경제 인프라가 미흡한 수준이다. 필리핀 마닐라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전력 및 산업용수 가격이 중국 선전·베이징보다 비싸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은 전반적 산업 인프라가 144개 평가대상국 중 90위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라오스와 미얀마는 세계은행 물류실적지수(LPI)에서 155개국 중 각각 109위, 129위를 기록했다. 교통인프라의 질 항목에서는 각각 107위와 133위에 그쳤다. 라오스와 미얀마의 전력 보급율은 각각 55%, 26%에 불과하다.

노동 현안, 정치적 불안도 문제다. 최근 태국은 정권 퇴진 운동으로 정치적 불안이 가속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 시위를 정부가 강경 진압해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부 아세안 국가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기 영합주의 정책으로 임금이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고 노동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이는 아세안 지역의 제조업 경쟁 우위를 깎아먹는 요인이다.

고등 교육이 상대적으로 경시돼 고급 노동자 공급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도 장기적으로 문제가 된다. 지금은 아세안 국가들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비교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급 인력이 부족하면 현지 중간 관리자를 양성하고 산업 고도화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일정 수준에서 성장이 멈추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노동력 이동·개방 수준에 대한 회원국간 이견이 크고, 뚜렷한 의사결정 체계가 없는 것도 아세안이 경제 공동체로 발전하는데 큰 걸림돌이다. 아세안 국가간 발전 격차는 회원국간 갈등 소지를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아세안 회원국간 인프라 격차는 지난 2005년에 비해 오히려 더 커졌다. 회원국간 국민소득 격차도 더욱 벌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집약적 산업 특성이 강한 업체가 아세안에 투자할 경우 고급 인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며 “현지 인력 교육 훈련에 투자를 확대하고, 부품의 현지화 비율 조정 등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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