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필립 할스만 `달리 원자론`

여기 흑백 사진 한 장이 있다. 사진 가운데에는 코믹한 콧수염이 인상적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하늘을 향해 뛰어 오른다. 그의 앞으로 마치 공간을 가르듯이 굵은 물줄기가 흩뿌려진다. 물줄기 끝에서는 지금 막 태어난 것처럼 고양이 세 마리가 허공을 가로 지른다. 사진 왼쪽 구석에는 고정된 것인지, 떠있는 것인지 모를 검은색 의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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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원자론(1948)_필립 할스만

1948년에 발표된 세계적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의 작품 `달리 원자론(Dail Atomicus)`이다. 이 사진은 합성일까? 필립 할스만은 유명잡지 `라이프` 표지를 101번 찍은 사진 작가였으며, 인물의 얼굴 표정에서 감춰진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심리적 초상`을 촬영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사람이 `점프`할 때 보이는 표정과 자세에서 가장 원초적 욕망이나 심리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 유명인의 다양한 점프 샷을 남겼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진은 합성이 아니다. 사진의 미스터리를 풀 실마리는 사진 오른쪽에 있는 이젤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 속 그림은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원자의 레다(Leda atomica)`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원자의 레다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입자로 알려졌던 원자를 둘러싼 당대의 과학이론을 담았다. 1808년 과학자 돌턴이 제기했던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론은 1900년대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원자 내부에는 전자와 원자핵이 있으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다는 이론이다. 과학자는 복잡한 원자 내부 구조를 연구했다. 원자핵을 조작하면 새로운 원자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20세기 마지막 `연금술` 연구의 불을 댕겼다.

결국 원자연구에 대한 경쟁은 냉전관계의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를 자극했고, `원자폭탄`이 탄생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낳았다. 당시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등 천재 과학자와 교류했던 살바도르 달리, 필립 할스만도 이 같은 영향을 깊이 받았다.

핵물리학에 영향을 받은 살바도르 달리는 원자의 내부를 상상해 그림 속 모든 사물이 떠 있는 원자의 레다를 그렸다. 그림 속 사물은 마치 원자핵을 연상시키는 레다를 중심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듯 공중을 돌고 있다. 신화 속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의 유혹에 넘어가 남자아이 둘과 여자아이 둘, 쌍둥이를 낳았다. 이는 무거운 원자핵이 거의 비슷한 질량을 갖는 2~4개 원자핵으로 분열되는 `원자핵분열`을 의미한다.

이 그림의 독특한 표현에 주목한 필립 할스만은 이를 사진에서도 재현해보고자 했다. 지금의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이를 합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때는 1940년대다. 살바도르 달리가 점프를 하면, 동시에 필립 할스만의 두 명의 조수가 고양이 세 마리를 허공에 던졌다. 또 한 명의 조수는 물을 뿌렸다. 필립 할스만의 아내는 카메라 앞에서 의자를 들고 서 있는다. 이를 다섯 시간 동안 반복해 촬영한 것이 달리 원자론이다. 과학과 예술의 완성은 결코 쉽지 않다.

참고로 이 사진은 내달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필립 할스만의 사진 전시회 `점핑 위드 러브`에서 직접 볼 수 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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