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중국-②노동력 찾아간 둥관·후이저우는 지금 엑소더스 바람

지난 2000년대 초반 `둥관(東莞)에서 선전(深川)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막히면 전 세계 컴퓨터산업 70%가 마비된다`는 말이 있었다. 1980년대 제조업체들이 몰려들어 지역 발전을 이룬 `둥관 모델`은 노동집약적 산업에 기대 발전한 중국 제조업의 상징이다. 지난 2009년 기준 부품·소재업체 2만5000여개, 외자기업 1만4600여개가 이곳에 들어섰다.

Photo Image
후이저우시 대아망 과학기술공단 전경

급부상하던 둥관시의 재정파산 위기설이 전해진 건 지난 2012년 말이다. 중산대학 연구팀은 둥관시 584개 촌 중 60%정도가 재정적자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경기가 둔화되고 기업 수출액이 감소하면서 둥관을 떠나는 기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둥관의 공장 수는 매년 15%씩 줄었다. 공장에 땅을 임대하고 그 수익과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해 온 둥관이 위기에 빠진 이유다.

둥관을 빠져나간 업체들은 후난성, 쓰촨성, 후베이성 등 내륙이나 동남아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지로 공장을 이전했다. 대만업체 델타가 지난 2009년부터 후난성 천저우(〃州)에 신공장을 세워 공장을 이전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인건비·물가 동반 상승이 이탈 불러

최근 둥관에 신공장을 지은 C사는 1㎡당 토지 임대료를 1200위안씩 내기로 계약했다. 매출액 7000억원 이상을 내는 우량기업이라 파격적인 혜택이다. 하지만 불과 5년 전을 돌아보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2000년대 중반 이 곳에 터를 잡은 다른 업체는 800위안에 계약할 수 있었다.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공장이 줄고, 재정 수입이 줄어든 정부와 대지 소유자는 임대가격을 더 올렸다.

지가(地價) 상승은 물가 상승을 동반한다. 물가가 오른 만큼 근로자 임금도 늘어야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신노동법` 공포 후 중국은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올리도록 정부 차원에서 독려해왔다. 시별로 최저 임금이 매년 발표되는데, 광저우 지역은 연평균 13~17%씩 임금이 오르고 있다. 올해 광저우 내 최저임금은 선전 1600위안(약 27만8000원), 광저우 1550위안(약 26만9300원), 둥관 1310위안(약 22만7600원), 후이저우 1130위안(약 19만6300원) 등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12년부터 5대보험을 의무화했다. 기본양로·기본의료·산재·실업·출산보험과 초과근무수당 등을 더하면 1인당 월 3000위안(약 52만1900원)~3500위안(약 60만8000원)이 최저 인건비로 책정된다. 춘절 등 명절에는 시급이 3배로 뛴다.

이직률도 높다. 춘절이 지나고 복귀하는 비율이 80% 미만이다. 상당수 기업의 경우 30~40%가량이 이직한다. 광둥성은 내륙에서 일거리를 찾아 나온 인력이 노동인구 대부분을 차지한다. 광저우 지역 희성전자 사업장 직원들 출신 지역을 보면 허난성 19%, 후난성 19%, 후베이성 13%, 쓰촨성 7%, 광시성 7%, 광둥성 7% 등이다. 90% 이상이 외지인이라는 뜻이다. 서부 내륙 개발이 시작되면서 인구 유입도 점점 감소해 구인난은 더 심화되고 있다.

전기요금 역시 국내보다 비싸다. 가정용 전기보다 산업용 전기료를 높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권순용 아이엠 둥관지사장은 “한국 사업장과 비교해 동일한 생산량이라도 1.5~2배가량 전기료가 더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증취세`는 매출액에 따라 9억위안 미만 4%, 10억위안 이상 17% 등 꽤 높은 수준이다. 가공무역으로 수출만 하던 과거에는 대부분 환급받았지만 중국 내수가 가장 큰 시장이 된 지금은 증취세를 그대로 물어야 한다.

◇떠나는 기업, 남는 기업

광둥성은 소비와 생산 기반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추가 투자로 새로운 생존방법을 모색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해 원가 절감을 추구하는 업체도 있다.

삼성전자는 후이저우 휴대폰 생산공장을 전자제품전문제조업체(EMS) 등을 활용해 외주생산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대신 새해부터 베트남 스마트폰·태블릿PC 생산량을 3억대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후이저우 생산인력은 현재 1만명 수준에서 점차 줄이고 베트남 타이응웬 제2공장에 현지인 4만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삼성전기 역시 둥관에는 회사 내 매출액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전원(파워)모듈 사업을 배치하고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 고부가가치 제품은 톈진이나 태국 등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다.

스마트폰 카메라용 자동초점(AF) 액추에이터 전문업체 아이엠은 지난 2012년 둥관법인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인데 이어 추가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이미 필리핀에 신공장을 설립하면서 물량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순용 아이엠 법인장은 “수출과 가공 위주 생산 체제라면 중국 동남부 해안가는 이제 매력이 떨어진다”며 “현지 진출 때 정부로부터 받은 임대료, 세제 혜택 조건인 공장 유지 기한을 채워 사업을 이전하는데 문제될 것도 없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광저우에 최신 공정인 8세대 LCD 라인을 건설 중이다. 노동집약 산업인 모듈 공정만 운영하다가 최첨단 기술인 LCD 패널 제조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의 투자에 따라 협력사인 희성전자·신보전자(한국명 뉴옵틱스)를 비롯한 TV 모듈업체와 디스플레이 소재업체들은 덩달아 이 지역에 투자를 단행했다. 김인수 LG디스플레이 광저우 법인장은 “내년 하반기부터 8세대 LCD 패널을 양산하고 중국 TV 시장 공략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건정 희성전자 법인장은 “숙련도 있는 직원들이 필요하고 주요 고객사가 중국에 있어 지속적인 현지 투자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