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차세대 인터넷주소체계(IPv6) 전환 정책을 세운 것은 10년 전이다. 기존 체계(IPv4)로는 인터넷 주소자원이 고갈될 수밖에 없으니 서둘러 차세대 체계로 가자는 판단이었다. 현명했던 이 판단은 그 후 잇단 로드맵 변경과 기업 투자 외면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올해 통신사업자 백본망의 전환율은 91%, 가입자망은 19%다. 2010년까지 100%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3년 넘게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오래 전에 준비하고도 2~3년 내 주소 자원 고갈 사태를 맞을 판이다.
수요 예측 실패다. 초기엔 너무 조급하게, 최근엔 너무 느긋하게 판단했다. 기존 주소 할당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과신했다. 롱텀에벌루션(LTE)과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인터넷 주소 수요가 급증하자 IPv6 전환은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정부가 조만간 새 로드맵을 만든다고 한다. 또다시 현실과 동떨어진 로드맵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게 만들어선 곤란하다. 통신사업자와 장비, 인터넷업체 등이 투자에 확신을 갖도록 정밀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남이 하는 것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통신사업자의 경우 사설 IP까지 동원할 정도로 주소자원이 고갈된 상황이다. 마지못해 하는 비용 추가가 아니라 수요와 시장을 키우는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IPv6 전환 정책 실패는 정부 비전과 민간 이해관계의 불일치가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수요 예측이 늘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기술 개발 속도와 새 통신기술이 야기할 수요를 보면 인터넷주소 고갈 시점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중국, 미국과 같은 나라는 우리보다 더 늦게 추진했지만 전환 속도가 더 빠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의 수요 예측과 민간 투자가 조화를 이룬 셈이다.
IPv6 전환은 관련 통신 솔루션 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가뜩이나 통신 투자 축소로 어려움을 겪는 솔루션 업체들이다. 새 로드맵이 통신 시장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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