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연구개발예산관리시스템(RCMS)`의 운영 은행으로 선정한 세 곳에 100억원이 넘는 현금 출연을 요구해 갈등을 빚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들이 주거래은행을 선정하면서 `IT기부채납`을 요구한 적은 많았지만 정부부처에서 자금운용 은행에 직접 현금 출연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최근 RCMS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기업·우리·신한은행과 현금 출연을 놓고 논란이 일자 금액 및 지원 방식을 일부 변경했다. 산업부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닌 제3의 독립기관 등을 통해 중소기업에 바로 지원되도록 수정했다. 금액도 처음 제시된 것보다 낮아졌다. 하지만 지원금 및 방식이 변경됐음에도 여전히 양측은 극명한 이견을 보이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산업부와 은행 간 팽팽한 줄다기리는 `추가 현금 출연`에서 비롯됐다. 세부 협약 과정에서 산업부가 이들 은행 세 곳에 100억원 규모의 현금 출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산업부 측은 이미 사업자 공모 때부터 은행들과 내용을 공유했던 것이라며 제안서에 없던 내용을 추가로 요구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소·중견 기업을 위해 일정 부분 기여를 해주기로 합의했던 사안”이라며 “향후 3년간 단계적으로 1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이고, 지원금을 낸 만큼 지분도 갖는 출자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이러한 오해는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은행과 일부분 이견이 있긴 했지만 심각한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놨다.
참여 은행들은 일단 산업부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원 금액과 방법 등을 놓고 여전히 `비상식적인 처사`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기관이 자금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금을 기업 육성 등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는 나쁘게 보지 않는다”면서도 “요구 금액이 은행의 예상 수익을 초과하는 수준이며 산업부가 어떤 형태로든 직접 운용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정부기관을 상대로 민간 은행이 반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은행 수익을 정부가 받아서 운용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기업 지원은 은행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요구하는 돈을 직접 운용할 게 아니라 차라리 기업 대상 저리대출 등의 방식으로 돕는 방안을 찾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은행 수익금을 출연, 투입하는 방식이 아닌 은행이 보유한 인프라와 컨설팅 조직 등을 활용, 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어떤 건물을 짓는 데 최초의 디자인으로 그대로 진행되는 사례는 드물다”며 “좀 더 효율적이고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시도에서 이견이 생긴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24일 협약을 체결하고 세부 지원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한편 `RCMS` 금고 은행으로 선정되면 약 2조7000억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예산을 관리하게 된다. 산업부는 기존 14개 은행에 분산 예치해 온 자금을 3개 은행이 집중 관리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