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창조, 사람에게 묻다
이인영 아이디어보브 대표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IT기업에서 병역특례로 군복무를 했다. 2010년 여름 아이폰 3GS가 한국에 출시되자마자 `이거다!`라며 무릎을 탁 쳤다. 평소 음악을 즐겨듣던 이 대표는 앱스토어에서 듣는 음원이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관련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해 가을, 학교 선후배와 지인들 10명을 모았다. 병특 퇴직금으로 반지하 사무실부터 덜컥 구했다. 멘토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절, 3개월만 개발하면 앱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와 개발자와 이견 등 넘어야할 산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무리한 대출이 결국 발목잡아... “갚을 것이라고 자신했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아이디어보브의 발목을 잡은 것은 2011년 3월 법인을 설립하면서 기술보증기금에서 받은 5000만원 가량의 대출금이었다. 직원에게 월급을 한 푼도 주지 못했지만 사무실은 단전까지 됐다.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충전하고 사용해야 될 정도였다. 그렇게 몇 달을 전전한 끝에 결국 월세를 내지 못하고 방을 비웠다. “내 돈을 안들이고도 창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정보가 거의 없었죠. 캠퍼스 CEO과정을 들으면서 제대로 사업계획서 쓰는 것을 배웠을 정도니까요. 과정 마지막날 이택경 프라이머 대표님, 송인해 본엔젤스 이사님이 심사위원으로 오면서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벤처캐피탈(VC)이나 엑셀러레이터라는 개념도 몰랐습니다. 멘토링이 있다는 것도요.”
◇각종 창업경진대회 참가하며 이름 알렸지만... “너무 일찍 샴페인 터뜨린 격”
이 대표는 2011년 12월부터 창업경진대회를 참가하기 시작했다. 포스코 신사업 공모전 최우수상, 브레인빅뱅 공동 대상 등을 차례대로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졸업식 때 이명박 대통령도 만났다. 2년간 진 빚을 갚고 새 사무실도 얻었다. 하지만 대표가 밖으로 뛰다보니 서비스 개발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격이었다.
“언론에 기사가 나고 투자자를 만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거품이 잔뜩 끼었습니다. 욕심이 많아지면서 10명이 넘는 정직원까지 뽑았었죠. 하지만 재야의 고수라 불리는 멘토 한 분이 `욕심 부리지 말고 서비스로 말해라`라고 촌철살인 말씀을 해줬습니다. 게임과 음악을 접목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과감하게 게임을 빼버렸죠. 집중했더니 결과물도 좋았습니다.”
◇시간 흐르면서 이용자들 안목도 높아져... “피봇팅은 재창업만큼 힘든 일”
문제는 시간이 지체됐다는 데 있었다. 처음 구현하려고 했던 `보노사운드`라는 서비스는 결국 탄생하지 못했다. 그 사이 이용자 안목도 높아진데다 후발주자가 음악과 게임을 접목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퀄리티 기대감을 높여놨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저작권 문제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유튜브를 활용해 음악을 서비스하려면 이용자당 금액을 지불해야만 했다. 마침 해외에 나갈 스타트업을 찾는 비론치 대회가 열렸다. 당당히 10개 스타트업에 선정되어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서비스를 접거나 아니면 외국으로 나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죠. 서비스를 피봇팅(아이템 바꾸기)하는 것은 새로 창업하는 것만큼 힘든 일입니다. 창업하기 전에 정말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합니다. 일단 시작하면 너무 힘들거든요. 내가 가고 싶은 시장과 철학이 확고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사업에 진정성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부는 민간 VC로 자금 이양해야... “대학생들, 스펙 쌓으려고 창업하면 큰 코 다친다”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 로켓스페이스와 플러그앤플레이에서 개발자와 투자자, 모더레이터(중재자)들을 만나며 서비스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주캐스트(주크박스+캐스트)라는 서비스명으로 미국에서 지사를 설립해 론칭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대기업과 제휴를 추진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대표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후배나 지인들이 창업에 대한 문의가 빗발친다.
“스펙 쌓으려고 창업하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명백한 세금 낭비입니다. 본인에게 창업DNA가 있는지는 스스로 물어보면 알 겁니다. 그런 친구는 차라리 좋은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6개월 자금 지원받고 말 거라면 진정성을 갖고 뭔가 해보려는 팀에게 주는 것이 맞습니다. 또 자금을 정부는 직접 나서기보다 이런 재목을 알아볼 수 있는 민간 VC나 엑셀러레이터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는 말이 `넷북 2개와 카페갈 돈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다`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아직 어설프지만 기획자와 개발자 2명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로 종잣돈 받고 개발하고 다시 키우는 쏠쏠한 재미를 아는 청년들이 많아져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