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51>김 대통령 `주부인터넷 교육` 각별한 관심

대통령이 한 번 움직이면 대통령 경호실은 초비상이다. 대통령 안전을 위해 최소 1000명 이상이 동원된다고 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 시나리오는 2급 비밀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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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4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정보화전략회의에 참석, 안병엽 정통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2000년 3월 27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를 방문했다. 안병엽 장관(ICU 총장, 17대 국회의원, 현 KAIST 초빙교수)으로부터 새해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받기 위해서다.

김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정통부 주변은 하루 전부터 경호가 삼엄했다. 청와대 경호실은 위해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통부 내부를 샅샅이 검색했다. 대통령 동선에 따라 천장까지 다 뜯어내 안전을 확인했다. 이어 폭발물탐지견(犬)을 동원해 폭발물이 있는지 구석구석 탐지했다. 검측이 끝나자 경호실은 대통령이 행사장에 도착할 때까지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참석자들은 신분증을 제시한 후 비표를 받아 검색대를 통과해 정통부로 들어갔다.

오후 1시 55분. 김 대통령이 탄 방탄용 검정색 승용차가 경호차량의 안내를 받으며 정통부 입구에 도착했다. 안병엽 장관이 김 대통령을 영접했다. 김 대통령은 곧장 행사장인 정보통신부 15층 대회의실로 올라갔다.

오후 2시.

정통부 업무보고는 안 장관이 김동선 차관(방통위 부위원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등 간부 소개, 업무 보고, 대통령 말씀 순으로 한 시간여 동안 지속됐다.

업무보고장 좌석 배치는 김 대통령이 전면 중앙에 앉고 대통령 왼쪽 줄에 안 장관과 김 차관, 김창곤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 등 정통부 간부들이 앉았다. 그 맞은편에 박태준 국무총리(작고, 자민련 총재, 포스코 명예회장 역임)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현 국민대통합위원장), 청와대 수석들이 자리를 잡았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정보통신부 보고를 받고 “다른 부처도 다 중요하지만 정통부는 국운(國運)을 좌우하는 막중한 역할을 해야 하는 부처”라며 “모든 국민이 정보화에 동참하도록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일해 달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통신산업이 21세기 디지털시대에 국가발전의 활력소가 돼야 한다”며 “정통부가 국민을 위한 정보화 견인차 역할을 해 모든 국민이 정보화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2005년까지로 계획돼 있는 초고속통신망 사업과 유럽순방에서 합의된 유럽과의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도 차질 없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가정주부 100만명 인터넷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김 대통령은 행사 후 그 해 4월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 주부 인터넷교육장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김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문이 정보화돼야 하며 인터넷의 핵심인 전자상거래 활성화에도 주력해야 한다”면서 “CDMA 같은 경쟁력 있는 분야는 수출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사이버범죄와 인터넷 음란물로부터 국민 피해를 막아주고 청소년들이 빠져들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 달라”면서 “정보화는 양날의 칼로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하지만 반대로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이에 앞서 김 대통령에게 “세계 10대 지식정보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초고속정보통신망을 당초 2010년에서 2005년으로 앞당겨 구축하고, 올해 전국 144개 지역을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등 국가사회 정보화를 집중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안 장관은 “해킹, 컴퓨터 바이러스 유포 등에 대비하기 위해 정보통신교육원 등에서 연간 4000명의 정보보호인력을 양성하고, 누구든지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한 해킹전용 시스템을 구축, 해커 명단을 확보해 유사시 `사이버 방위군`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이어 “올해 위성방송사업자를 허가, 2001년 본방송을 실시하도록 하고 올 하반기에 디지털TV 시험방송을 실시하고 7월 우정사업본부를 발족시켜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하며, 전국 3622개 우체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편·금융과 인터넷이 결합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 장관은 또 “현재 대도시와 일부 중·소도시에만 설치·서비스되는 ADSL 서비스를 농어촌 지역으로 확대, 올 6월 말부터 전국 대부분 읍까지 ADSL 장비를 공급하는 한편, 현재 약 15만명에 이르는 ADSL 서비스 수요 적체를 5월까지 완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안 장관의 회고.

“김 대통령은 가정주부 인터넷교육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셨어요. 좋은 아이디어라며 기회가 되면 교육장에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해 4월 직접 현장에 가셨습니다. 업무보고에 이어 한국통신(현 KT) 전시장도 둘러보셨습니다.”

안 장관은 김 대통령에게 “지식정보화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정보화전략회의 정례화 등 국가정보화 추진체계를 더욱 강화해 줄 것”을 건의했다.

그해 4월 6일 오전 10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제4차 정보화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전략을 논의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IMF 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인터넷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며 지난 2년간의 정보화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정보격차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해소하는데 정부가 적극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병엽 정통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구체적 실천계획`을 보고했다. 안 장관은 “올해 말까지 전국 196개 읍 단위 지역까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면 단위 지역까지 확대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초고속유선망 설치가 어려운 도서·벽지의 우체국 등에 올해 말까지 인터넷플라자 100군데를 추가 설치하겠다”며 “주부 대상 인터넷교육을 2001년까지 200만명으로 확대하고, 2002년까지 농업인 15만명, 2003년까지 어민후계자 2만명에게 정보화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날 교육부는 `교육정보화 기반 조기구축`을,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는 `기존 산업의 정보화 촉진 방안`을, 국방부는 `군 장병 정보화교육 강화 방안`을 각각 보고했다.

그해 4월 13일.

제16대 총선이 실시됐다. 4·13 총선에는 강봉균, 남궁석 전 정통부 장관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청와대와 새천년민주당이 지역구 후보로 차출한 것이다.

남궁 장관은 그동안 여권으로부터 총선출마 압력을 받아왔다. 그의 고향인 경기 용인갑 출마는 수도권에서 경제관료 돌풍을 일으키려는 여권의 총선전략과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뜻이 없었다. 그는 “장관 임기를 2년만 보장해 준다면 기업에서 정부를 배우러 오도록 정말 일을 잘할 자신이 있다”고 할 만큼 정보화전도사로서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리틀DJ로 불린 한화갑 당시 국민회의 사무총장(평화민주당 대표 역임, 현 동서협력재단 총재)과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민주당 대표 역임, 현 국민대통합위원장)의 요청과 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는 고심 끝에 2월 11일 고향에서 총선출마를 결심하고 장관직을 사퇴했다.

남궁 전 장관은 4·13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해 초선임에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9년 1월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청와대 정책기획과 경제수석, 재경부 장관을 역임한 강봉균 전 장관은 성남 분당갑 지역구에 출마했다. 상대는 한나라당 고흥길 후보(특임장관 역임)였다. 그도 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차출된 케이스였다.

그는 신문에 자신의 출마설이 나돌자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계속 언론에 출마설이 나와 배후를 알아보니 당이 진원지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강 전 장관은 한광옥 비서실장에게 전화해 “대통령의 뜻이냐”고 물었다. 한 실장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강 전 장관은 “이게 대통령 뜻이구나. 그렇다면 출마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민주당에서 “희망지역을 말하라”고 했다. 강 전 장관은 “민주당에서 제일 취약지역이 어디냐, 그곳에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서 여권 강세지역인 분당에 출마하게 됐다.

강 전 장관의 증언.

“당에서 1억원, 김 대통령이 1000만원을 마련해 주었어요. 나머지는 지인과 후배들 지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여론은 제가 절대 우세였어요. 선거 당일 모두 당선이라고 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에 몰려와 취재를 하고 갔어요. 그런데 막판에 뒤집혀 결국 낙선했어요. 선거판은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4·13 총선에서 낙선하고 백수가 돼 있을 때 안병엽 정통부 장관이 KT 사장직을 제안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념 경제부총리(현 전북대 석좌교수)가 “재경부 장관 한 사람이 KT 사장이 뭐냐”며 강력히 만류했다.

그러더니 2001년 3월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발령을 냈다. 강 전 장관은 2002년 8월 8일 실시된 전북 군산 보궐선거에 다시 차출됐다. 강현욱 민주당 의원(현 조선대 이사장)이 전북도지사에 출마하자 치른 보궐선거였다.

강 전 장관의 증언.

“청와대가 미안했던지 군산 보궐선거에 출마하라고 하더군요.”

그는 3선을 하면서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등을 지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16대 국회에는 정보통신 전문가가 다수 입성했다. 정통부 장관 출신인 강봉균, 남궁석 의원을 비롯해 데이콤 사장 출신의 곽치영 의원(경기 고양 덕양갑),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을 지낸 김효석 의원(전남 곡성·담양·장성), 한양대에 국내 처음 컴퓨터연구소를 세운 허운나 의원(비례대표. ICU 총장 역임, 현 스타트업포럼 이사장, 채드윅 송도국제학교 고문) 등이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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