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삼성전자 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 수입금지를 권고한 국제무역위원회(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실상 사문화됐던 거부권이 26년 만에 나오면서 미국 정부는 `보호무역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결정은 산업적 파장과 함께 삼성전자와 애플의 향후 특허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3일(현지시각)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어빙 윌리엄슨 ITC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무역정책실무협의회(TPSC), 무역정책검토그룹(TPRG), 관련 당국, 당사자와의 심도 있는 협의를 거친 결과 ITC의 수입금지 결정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프로먼 대표는 “이번 결정은 미국 경제 경쟁 여건에 미칠 영향과 미국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 등 다양한 정책적 고려에 대한 검토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ITC 권고를 거부한 데 대한 부담도 내비쳤다.
프로먼은 “이번 정책결정이 ITC 결정이나 분석에 대한 동의나 비판은 아니다”며 “특허 보유권자가 구제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법원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USTR의 결정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해석된다. ITC 결정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 1916년 ITC 설립 이후 단 6번 있었고, 특히 지난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에는 한번도 없었다.
이번 결정으로 애플은 아이폰4와 아이패드2 등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계속 수입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지금도 미국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에서 활발하게 판매되는 아이폰4를 계속 수입해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애플은 미국 행정부의 결정에 대해 즉각 환영을 표시했다.
크리스틴 휴젯 애플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번 중요한 사안에서 혁신을 지지한 (오바마) 행정부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삼성전자가) 특허체계를 남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당사 특허를 침해하고 라이선스 협상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음을 인정한 ITC 최종 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거부권 행사로 향후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협상에 악역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동준 특허법인 수 변리사는 “현재로서는 애플이 우위를 점한 셈”이라며 “거부권 행사 이전에도 애플이 크로스 라이선스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거부권까지 행사하면서 당분간 애플이 좀 더 고자세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ITC는 지난 6월 4일 애플의 구형 제품이 삼성전자 특허를 일부 침해했다고 판결, 이들 제품을 미국 내 수입 금지해야 한다고 백악관에 권고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