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374>화장실 가기 전의 급한 마음과 화장실 다녀온 이후의 편안한 마음

위기에 처한 사람이 다급하게 달려와서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고 간청한다. 사정이 딱해보여서 한번 눈감아주고 도움을 준다. 한번 봐준 사람이 위기를 모면한 후 연락이 끊긴다.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딱 한 번만 봐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에 부탁을 거듭한다. 이전의 사례에 비춰 볼 때 절대로 안 된다고 거절한다. 거절당한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제발 딱 한 번만 봐주면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울고불며 사정을 한다. 자고로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너무 쉽게 무너져서는 안 되고, 여자는 남자의 애걸복걸하는 통사정을 자꾸 봐줘서는 안 된다. 사정이 너무나 딱해 보여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이라는 기분으로 눈감아준다. 이렇게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지는 않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또 다시 반복되는 역사가 되풀이된다.

반복되는 실수의 역사와 위기 모면의 어리석음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봐주지 말아야 한다. 위기를 모면한 사람은 화장실 가기 전 급한 마음과 화장실 다녀온 이후의 편안함처럼 위기 이전과 이후가 너무나 다른 자세와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규정에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된다는 조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규정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지 사례가 생기면서 규정은 그저 규정일 뿐, 지키지 않고 막판에 밀어 붙이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한다. 신뢰는 원칙에 대한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일관성이 무너지면 신뢰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예외 규정이 생기고 변칙이 판을 치기 시작하면 그 조직이나 공동체는 무너지는 길로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코너에 몰리기 시작하면 모든 걸 자기 기준으로 맞춰 상대방을 배려하기 어려워진다. 급하면 평소에 목숨을 걸고 제한 시간에 맞추자. 그럴 수 없다면 깨끗하게 마음을 비우고 다음 기회를 생각하는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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