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자를 그린 기러기 무리가 대륙을 건너 수만 킬로미터 멀리 날아가는 법. 초고속 성장한 중국 화웨이가 택한 경영 비책은 여기서 나왔다. 선두 기러기를 바꾸며 방향을 잃지 않는 `무리의 지혜`를 특별한 CEO 제도로 흡수했다.
![[글로벌 이노베이션 DNA] 화웨이의 로테이팅 CEO 시스템 `멀리가는 지혜`](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6/14/440682_20130614145759_048_T0001_550.png)

6개월 마다 CEO를 바꾸는 `로테이팅(Rotating·순환) CEO 제도`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정원처럼 꾸며진 화웨이의 선전 본사에 직접 찾아가 눈으로 확인한 로테이팅 CEO 제도는 회사의 변화와 혁신 의지를 담은 최선의 무기였다.
2011년 로테이팅 CEO 제도를 도입한 화웨이는 빠르게 성장했다. 네트워크 장비 사업과 모바일 기기 사업, 기업용 솔루션 사업을 축으로 하는 화웨이의 3대 비즈니스가 일제히 매출을 늘렸다. 세계 1위 네트워크 장비 기업 에릭슨을 제쳤고 스마트폰 사업 2년 만에 세계 3위로 올라섰다.
◇반년 마다 바뀌는 CEO…`멀리 가는 지혜`=지금 화웨이 CEO는 켄후(Ken hu)다. 정확히 말하면 `액팅(Acting)` CEO다. 4월 CEO가 된 그가 10월이 되면 물러난다. 대신 에릭 슈가 CEO 자리를 맡는다. 화웨이에는 이렇게 한 명씩 액팅 CEO 역할을 하는 총 3명의 로테이팅 CEO가 있다. 한 명은 액팅, 나머지 두명은 논액팅 CEO인 셈이다.
3명이 순서대로 액팅 CEO를 맡은 후 다시 턴을 돈다. 2011년 10월 처음 시작한 이 제도는 켄후를 시작으로 한 바퀴 돈 후 지난 4월부터 다시 켄후가 맡았다. 총 5년간 10번의 액팅 CEO를 3명이 번갈아 맡는다.
3명의 로테이팅 CEO는 부회장(Deputy Chairman)이라 불린다. 이들과 런정페이 창업자 겸 회장이자 CEO, 쑨야펑 여회장(Chair Woman)을 포함한 총 5명이 최고 임원이다. 13명으로 구성된 최고임원조직 임원관리팀(EMT)의 일원이다. 사내에선 이 13명을 BOD(Board of Director)라 칭한다.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전담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정리하면 1명의 액팅 CEO와 이를 보좌하는 2명을 포함해 3명의 로테이팅 CEO와 의사결정을 돕는 10명의 BOD가 있는 셈이다. BOD의 일원 중에는 런 회장의 딸인 캐시멍 최고재무책임자(CFO)와 3개 사업본부 책임자도 포함돼 있다. 액팅 CEO는 중요한 의사결정 때마다 나머지 2명의 CEO와 의논하고, 중요한 사안은 13명이 일 년에 수십 번씩 모여 머리를 맞댄다.
◇명석한 두뇌 집단의 의사결정…`독재와 아집`의 경계=화웨이가 로테이팅 CEO 시스템을 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수 년 간 집권하는 CEO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변화에 빨리 적응하면서 차기 지도자 능력도 미리 점검할 수 있다.
처음 제안한 사람은 런정페이 회장이다. `플라이트 오브 더 버팔로(Flight of the Buffalo)`를 읽고 감흥을 받은 것이 시초다. 책은 중앙집권적인 들소의 리더십 대신 대장을 바꾸면서 변화에 적응해가며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의 지혜를 담고 있다.
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한 사람의 결정력과 통찰에 의존하는 것보다 그룹을 이룬 CEO가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유리하다”며 “결속을 통해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기대했다. 또 “다양성의 조합 지점을 찾아내고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의사를 수렴해 각종 변화에 대응하면서 고집센 한 사람의 결정이 범할 수 있는 오류를 줄이고 위험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다. 3명의 로테이팅 CEO는 각각 사내 전략·금융·인적자원(HR) 분야를 경영 의사 결정을 분담한다.
◇철저한 능력 경영…기술 `올인` 철학=화웨이의 의사결정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BOD의 면면을 보면 회사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13명은 7400명의 임직원 주주가 뽑은 51명의 대표 주주가 선출한다. 많은 동료에게 능력을 인정받아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검증된 능력 없이 아무개 상관의 발탁 혹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CEO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구조다. 런 회장이 최근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이가 없어 회사를 가족에게 승계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로테이팅 CEO 제도에도 화웨이가 특정 개인의 회사가 아니라 1만5000명의 직원 중 7400여명이 주주로 있는 `직원의 회사`란 철학이 깔려있다. 런 회장은 “내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차기 회장이 누가 될지는 내가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고 말했다. 상장을 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도 회사의 이익을 직원과 공유하는 직원 주주 시스템의 위력을 믿기 때문이다.
매출의 13%를 R&D에 투자하고 전 직원의 45%가 엔지니어인 회사답게 BOD 13명은 모두 공학 전공의 엔지니어 출신이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화웨이가 기술력과 경영의 지혜를 최대한 활용하는 특별한 의사결정 시스템인 것이다.
선전(중국)=
2011년 10월 시작한 화웨이의 액팅 CEO 순서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