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강국 기술대국]과학자에게 자유란?

지난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문길주 원장을 만났습니다. 처음 뵙는 자리였지만, 예의 호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청신했습니다. 이날 문 원장은 KIST의 `창조경제 추진대책`을 설명하면서, 내내 걸리는 게 있는 듯 싶었습니다. “이거 정부 시책에 맞춰, 등떠밀려 하는 거 아니다.” “대부분 기왕에 해오던 거다.” “결과나 (창조경제)성과평가에 얽매이진 않을 것”이란 말을 여러번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만난 대다수 과학자들은 자존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와 언론에 요구하는 것이 `우리 연구원들 자존심 좀 세워 달라`거나 `자유를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문 원장도 이날 만남의 말미에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연구원들에게 `무한대의 자유`(unlimited freedom)를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유독 `자유`와 `자존심`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이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지난달 감사원은 기초기술연구회 소관 10개 연구원의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KIST를 비롯한 10개 연구기관이 인력을 실제보다 부풀려, 인건비 213억원을 직원 성과금으로 전용했습니다. 일부 임직원은 유흥주점 등에서 법인카드를 부당 사용하거나 허위 출장을 가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과기계는 “극히 일부의 문제를 놓고, 정부가 `침소봉대`한다”고 억울해 합니다. 남의 돈으로 연구하는 건 우리나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이나 `치사`하긴 마찬가진가 봅니다. 얼마전 과학기술한림원 행사장에서 만난 맷츠 욘슨 스웨덴 예테보리대 물리학과 교수(전 노벨물리학상 심사위원장)는 “스웨덴 연구소와 대학들도 정부의 금전적 지원에 늘 목말라 한다”며 “그래서 연구원이나 학생들이 자체 자금 확보를 위한 `펀딩용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한다”고 말했습니다.

노벨상 선정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설립 이후 지난 400년간 일체의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 왔기 때문에,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한 것이라고 욘슨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과기계가 자유를 얻고 자존심을 지키는 데는, 아무래도 더 많은 희생과 수고가 뒤따라야 할 듯 싶습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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