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개화의 과학, 꽃은 언제 피는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본 적이 있나요?” 바야흐로 봄,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다. 2007년 개봉했던 일본 영화 `허니와 클로버`는 청춘이 그리는 사랑과 소동을 풋풋하게 그려내 사랑받았다. 영화 속 주인공 다케모토(사쿠라이 쇼)는 갓 미대에 입학한 `어리바리` 대학생이다. 다케모토는 우연히 간 대학모임에서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하구(아오이 유우)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교 선배 마야마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나즈막이 선언한다. 때마침 하구와 다케모토 사이에서 흩날리는 벚꽃은 이제 막 시작된 사랑을 은유한다.

Photo Image
영화 `허니와 클로버`에서 다케모토(사쿠라이 쇼)는 구우(아오이 유우, 사진)를 처음 만난 날 사랑에 빠진다.

`개화(開化)`에 얽힌 이야기와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종자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이 피어나는 것을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묘사하는 점이 그렇고, 개화나 사랑이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많은 것도 비슷하다. 또 종자식물은 자신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꽃을 피워 벌이나 나비 등 다른 동물과 곤충을 유혹하고, 이는 열매가 된다. 사람도 사랑으로 연인이 되거나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기도 한다.

그렇다면 봄꽃은 어떻게 피는 것일까? 단순히 따뜻한 온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봄과 가을의 온도는 사람에게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피는 꽃은 다르다. 개나리와 동백꽃은 이른 봄에 피고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국화가 핀다. 이것은 꽃눈의 형성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봄에 피는 꽃눈은 월동 전까지 외부에서 내부로,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 순으로 분화를 거친다.

실제로 개화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꽃의 종류마다 온도, 일조량, 개화 호르몬(DNA)설까지 다양하다. 식물의 성장시기와 온도, 빛 등 외부 요인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얼마 전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단장 남홍길) 김유미 박사 연구팀이 식물세포 내 단백질의 분포가 개화시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겨우내 얼어붙은 가지 끝에서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변화는 아직 과학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봄에 피는 꽃처럼 사람도 보통 첫 사랑을 사춘기에 시작하지만, 그 시기나 지속기간은 개인차가 있다. 늦었다고 미리 실망할 것은 없다. 먼저 찾아오거나 늦게 찾아오거나 꽃의 색깔과 향기가 제각각인 것처럼 그 사랑의 시기나 형태도 다를 수 있다. 심지어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도파민 호르몬의 영향으로 행복감을 느껴도, 그 유효기간이 길어야 3년이란 연구도 있다.

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벚꽃축제를 기다린다. 진해 군항제, 여의도 벚꽃축제, 산수유 축제 등 전국지도를 펼쳐놓고 개화 일정을 살펴보는 나들이객도 적지 않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은 PC홈페이지는 물론이고 모바일까지 개화시기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한다. 참고로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벚꽃 개화 시기는 오는 9일이다.

만개한 벚꽃은 삭막한 도심의 풍경마저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 서먹하던 사이도 쉽게 사랑에 빠질 것 같다. 한때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벚나무 원산지가 한국으로 알려지면서 벚꽃을 바라보는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개화의 과학에 따르면 아름다운 봄꽃을 만나려면 추운 겨울과 긴 밤을 지나야만 한다. 사람도 품은 꽃눈이 다르면 피어나는 시기도 다를 수 있다. 주인공 다케모토는 번민의 청춘을 통과하고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한다. 꽃을 피우는 목적도 결국은 더 많은 사랑과 그 결실을 나누기 위해서다. 벚나무도 사실은 버찌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영화 허니와 클로버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봄날의 대학을 배경으로 청춘과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오롯이 그렸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며 고민 많던 청춘을 떠올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감춰진 과학의 비밀을 상상하기도 한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