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과학자가 신음한다]<상>열악한 이공계 여성 연구원 실험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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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과학자가 부쩍 늘었다. 세상의 절반까지는 아니지만 연구소에 많게는 30%가 여성이다. 남성 중심의 경제성장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여성만이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추동할 수 있다고 치켜세우면서도 보이지 않는 금녀의 벽이 여성 과학자들을 울리고 있다. 연구소는 여전히 남성 중심이다. 여성에게는 연구 환경이라 지칭할 정도의 여건조차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 연구개발 인력의 중심으로 부상한 여성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위한 대대적인 처우, 환경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성 과학인의 실태와 개선 방안을 시리즈로 집중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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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대학원 가고 나서 생리 불순이 있었어요. 그전에는 40일에 한 번이었는데 지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두세 달에 한 번인 것 같아요. 지난 학기에는 하혈 비슷하게 했는데 병원 가서 주사를 3~4개월간 맞았어요. 생리통이 원래 심하긴 한데 좀 더 심해졌고 생리기간도 더 늘었어요. 어느 순간 하혈을 좀 많이 해서 (병원에 가니) 스트레스성 같다고…”-S대 생명공학과 대학원생.

#“실험실은 발암물질을 많이 사용해서 임신하면 일을 그만둘 생각이에요. 아기에게 미안해서 안 될 것 같아요. 육아랑 병행하던 분이 실제로 그만두셨어요. 돈도 돈이지만 본인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아기냐 공부냐 하는데 결국에 애가 계속 크잖아요. 남자친구도 이 일 계속하는 걸 싫어해요. 시약이 어떤 건지 아니까…”-C대 원예학과 대학원생.

이공계 여자 대학원생이 신음하고 있다. 실험실 환경이 매우 열악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해물질을 다룰 때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봐 우려하는 대학원생이 대다수다. 여성과학기술인의 경력 단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유해물질을 다루는 실험실 근무 이공계 여자 대학원생 450명을 상대로 조사한 `이공계 여자 대학원생 여성질환 건강검진 지원 방안 연구` 결과를 3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은 `유해물질을 다룰 때 건강문제가 생길까봐 불안하다`고 답했다.

`실험실 근무로 유해물질에 노출돼 임신이나 태아 건강에 손상이 올까 우려된다`고 응답한 예도 86.9%에 달했다. 대다수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는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72.4%)는 의견을 피력했다. S대 생명공학과 한 여자 대학원생은 “학교를 다니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무리”라며 “기업에 취직한다면 환경이 많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혜숙 WISET 소장은 “열악한 실험실 환경이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 단절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공계 여자 대학원생이 건강·출산을 걱정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60%)은 실험실의 기본이 되는 환기조차 잘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여성 연구자를 위한 모성보호 정밀검진 지원사업` 결과 여성 연구자가 사용하는 유해물질에는 사염화탄소, 암모니아, 질산, 농약, 페놀 등 60여가지가 있다.

조사를 주도한 김영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실험실 환경과 공부하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매일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예도 있다”며 “건강 변화가 가장 크다고 느끼는 부분은 눈·코·호흡기·피부 등 신체기관부터 근골격계·정신적 스트레스·산부인과적 문제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응답자 64.9%는 실험실 근무로 `건강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밝혔다.

실험실 환경이 열악한 것은 실험실 안전규칙 교육과 관련 건강검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2011년 개정된 `연구실안전환경조성에 관한 법률` 10조에 따르면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연구자는 일반건강검진과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건강검진 통보를 받은 이공계 여자 대학원생은 46%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이 통보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건강검진 대상자로 선정돼도 검진이 형식적이거나 단순 혈액·소변 검사만 시행하는 수준이었다.

한 여자 대학원생은 “혈압조차 재지 않고 의무적으로 혈액·소변 검사만 하면 끝”이라며 “일반 대학에서 하는 건강검진 수준보다 못한 것 같다”고 답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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