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그로스 2.0 이젠 에너지 안보다]<6>원자력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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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원자력 정책이 `한미 원자력협정`의 커다란 시험대에 놓였다. 1973년 개정 발효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지난 40년간 국내 원자력 연료의 평화적 사용과 제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제 효력 만료일이 불과 1년 남짓 남은 상황이다. 그 전에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는 공백기가 없도록 재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핵심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허용 여부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공간이 곧 포화상태에 이르는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원자력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할 절실한 문제다. 우리 정부가 40년 만에 재개정 협상에 들어가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그린그로스 2.0 이젠 에너지 안보다]<6>원자력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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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는 고리원전.

◇한미 원자력협정과 사용후 핵연료=`한미 원자력협정`은 원자력 연료의 평화적 사용으로 핵 무기화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간 체결한 상호 협정이다. 정식명칭은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으로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를 못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협정 효력으로 그동안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지난해 6월 기준 36만8000다발이 발생했고 임시 저장용량(51만8000다발)의 71%에 육박한다. 매년 경수로형 원전 17기에서 약 1000여다발, 중수로형 원전 4기에서 1만6000다발의 사용후 핵연료가 발생하며 2016년부터 고리원전부터 포화가 예상되고 있다. 지금 상황으로는 불과 3년 뒤면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위기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부가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곳은 한미 원자력협정이다. 정부는 이번 개정협정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40년전 협정을 체결할 당시에 비하면 한국의 원자력 지위가 상당부분 높아진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정협정에 대한 관측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측은 지속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 원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핵 비확산 차원에서 쉽게 관련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협의대표단이 원자력협정과 관련해 양국의 협력기반 강화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이번 정책협의대표단의 방미 일정에서 핵심 의제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해서도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상의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양국이 협력기반 강화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했지만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정책협의대표단 단장이었던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원자력 협정 관련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현재 우리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관련 신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술은 기존 재처리와 달리 고준위 방사성 물질 분리과정에서 핵무기 원료인 순수 플루토늄이 추출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 기술 역시 특정 환경조건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어 완벽한 대안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외교통상부 한미 원자력협정 TF 관계자는 “큰 차원에서 한미 양국이 원자력협정 개정 필요성에 합의했지만 그 방향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며 “우리 정부의 희망대로 핵연료 재처리 허용이 성사될 수도 있지만 협정기한 연장과 같은 다른 결론이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사례를 통해 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전망=일본은 1988년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포괄적 동의를 보장 받았다. 주요 명분은 일본의 원자력 활동이 국제사회의 신뢰성을 담보했고 투명성 제고 노력과 원자력 연구결과의 필요성 인정이다.

일본·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원자력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홍보와 기술개발로 원자력 선진국의 입지를 강화해 왔다. 이후에도 일본은 적극적인 홍보작업을 펼치고 비확산 문제 전문가를 증원, 민간전문가 그룹이 미국의 학자, 관료들과 지속적인 의견을 교환해 자국의 원자력 프로그램이 핵 확산과 연결되지 않는 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원자력협정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 프로그램의 국제사회 신뢰성 담보가 중요하다. 한국 원자력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긍정적이다. 세계 6위의 원전설비를 가진 주요 원전 발전국이자 지금은 원전 수출국의 지위도 확보하고 있다. 지속적인 원전 육성 정책으로 최근에는 주요 선진국에 원전 전문 엔지니어를 파견하는 수준의 기술력도 확보하고 있다.

변수는 우리나라 가지고 있는 특수한 안보상황이다. 기술이나 대외 활동 면에서는 합격점이더라도 북한 핵 관련 활동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북한의 3차 핵실험도 한미 원자력협정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원자력 업계는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개정협정에서 핵연료 재처리 허용 여부를 떠나 지속적으로 핵연료의 평화적 사용과 비확산 활동의 노력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외교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미국 내 영향력 있는 개인과 단체들을 수시로 초청해 세미나와 심포지엄으로 일관되게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켰듯이 관련기관의 공조체제와 민간부문의 적극적인 협조로 외교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중간저장시설 병행=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마련은 사용후 핵연료 문제에 있어 재처리만큼 중요한 이슈다. 원자력 관계자들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핵연료 재처리가 성사되어도 중간저장시설 마련이 병행되어야 2016년부터 직면하게 될 포화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1988년 1997년 준공 목표로 중간저장시설 건설계획을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관련 계획을 연기해 왔다. 이후 2007년부터 사용후 핵연료 관리의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공론화 절차 및 내용`에 관한 준비 작업을 추진했고, 연구용역 결과 등에 대한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위해 민간 주도의 `사용후 핵연료 정책포럼`을 지난해까지 운영했다. 포럼은 2024년까지 중간저장시설 완공 촉구를 위한 대정부 권고서를 지경부에 제출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저장하고 있지만 세계 원전운영국 31개국 가운데 22개국은 대부분 지상건식저장방식의 중간저장시설은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해외사례와 국내여건을 고려해 우선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최종관리방안은 국제동향과 기술개발 추이 등을 살펴 장기정책으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연내에는 관련 문제의 공론화를 위한 민간자문기구인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또 공론화 결과를 반영해 법정계획인 `방사성폐기물관리 기본계획`을 내년에 수립할 예정이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핵연료 재처리 및 최종처리 관련 새로운 기술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며 “한미 원자력협정으로 핵연료 재처리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지만, 새로운 처리기술 적용의 징검다리인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해 확실한 핵연료 대안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저장현황 (단위: 백다발/2012년, 6월말 기준)

자료: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소박스]파이로프로세싱으로 핵무기 우려 절감

파이로프로세싱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제안하고 있는 핵연료 재처리 기술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재활용) 기술은 1940년대 이미 개발되었지만 핵무기 확산 우려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의 국가 정책적 리스크 완화를 목적으로 핵연료의 무기화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개발된 기술 중 하나다.

기술의 기본원리는 사용후 핵연료를 녹여 전기분해로 고속로용 핵연료 제조에 사용되는 고준위 방사성 물질을 분리 추출하는 방식이다. 분리과정에서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이 별도로 추출되지 않고 다른 핵물질과 혼합되기 때문에 핵연료를 무기화하는데 제한이 따른다. 다른 분리 추출기술은 순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어 핵확산 방지차원에서 국제적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에서 고준위 방사성 물질을 분리하면 그 부피가 대폭 줄어 저장공간 확보에도 장점이 있다.

우리 정부가 원자력협정에서 파이로프로세싱을 제안하는 것도 방사성물질 분리과정에서 플루토늄 추출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핵연료 무기화 가능성이 낮은 만큼 한국·중국·일본·북한이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동북아 안보정세에 미치는 파급이 그만큼 적고, 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관련 기술은 미국 에너지부 주도로 국제공동기술개발이 추진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원자력연구원이 1999년부터 재활용 기술로 개발을 착수해 왔다. 기술 수준은 미국이 상용화 기준 약 50% 정도에 도달해 있고, 우리나라는 미국의 80% 수준이다.

핵연료 재처리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도 단점은 있다. 플루토늄 추출에 제한이 있지만, 특정조건에선 파이로프로세싱도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를 기존 재처리 기술의 유사기술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미 의회는 핵 확산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련 국제공동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GNEP의 예산을 완전 삭감한 전례가 있다.

경제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용화된 습식 재처리 기술도 경제성이 없는 상황에서 더욱 고난도의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또 파이로 처리시 2차 고준위 폐기물의 발생과 관련시설 건설비, 부지확보 비용 등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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