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로 14년차 벤처CEO 생활에 접어드는 홍순성 아이아케뮤니케이션 사장(43). 회사 설립 당시만 해도 장미빛 꿈에 들떠 있었지만, 그새 3개 정부를 거치며 홍 사장 역시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혀 있다. 지금껏 정부가 내건 중소·벤처기업 정책에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며 생긴 `훈장`인 셈이다.
홍 사장은 “사실 이명박 정부 때 상대적으로 정부의 지원이나 혜택을 덜 받았다는 게 주변 중소기업 CEO들의 대체적인 정서”라며 “그만큼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에서도 이 같은 중기·벤처 CEO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IT전담 부처에 대한 필요성은 물론, 그에 대한 업무 범위와 주요 기능까지 일선 CEO들은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벤처·중기 활성화, 새 정부 과제이자 부담
새 정부가 벤처·중기 활성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묻는 질문에, 과반수의 응답자(52.2%)가 `기존 벤처/중기 진흥정책의 확대 개선`을 꼽았다. 전문 펀드 조성과 세재 감면 등은 각각 18.3%와 17.5%의 비교적 낮은 호응도를 보였다.
기존 정책의 대폭 개선을 원하는 CEO들의 목소리가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의 관련 정책이 미흡했다는 얘기다.
이를 전면 개선시키는 게 새 정부의 당면 과제인 셈이나,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에 이는 동시에 `부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인물과 성향에 있어 이전 정권과 큰 차별화를 둘 수 없다는 게 이번 정부의 한계”라며 “특히 금융·세재 지원 관련 정책과 법안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절 굳혀 놓은 것들이 많아 이를 개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말기에 벤처·중기 활성화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코넥스 시장의 개장이 사실상 백지화된 데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새 정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침체된 증시 환경이 코넥스 개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별다른 지원 의지가 없던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라며 “새 정부는 이 같은 보여주기 식 선언적 정책보다는 실질적 도움이 되는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해주는 것이 기존 코스닥 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가정신, 뉴이코노믹의 화두
창업기업가정신 고양을 위한 아이디어를 묻는 설문에 59%의 CEO들이 `교육 클러스터 마련`을 꼽아 압도적인 응답률을 보였다.
그만큼 기업가정신에 대한 기초적인 계몽과 교육·홍보에 목말라 있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다음으로는 기업가정신 커리큘럼(13.4%)과 대기업의 교육시스템 개방·확대(9.0%)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 주도형 교육프로그램 개발(7.1%)과 각 대학 내 창업학과 신설(4.1%)을 요구하는 응답도 있었다.
이번 설문에 응답한 한 CEO는 “서울대를 나와도 사업하겠다면 다들 말리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 들어가면 대접이 달라지는 게 대한민국 현주소”라며 “대기업 안 들어가도 창업해서 작게나마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도 내는 게 국가와 민족에 보다 더 기여하는 길이라는 것은 결국 `기업가정신`을 통해 고양시켜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대기업 간 실질적 상생협력 확대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대·중소기업 CEO 간 의견차가 드러났다.
대기업 CEO들(41.0%)은 `금융·세제 등 정책적 지원 강화`를 꼽은 반면에 중소기업 CEO들(31.9%)은 `주기적 점검 및 공표 등 정부의 정책 의지`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이는 대기업 스스로의 상생협력 개선의지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것으로,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감독이 필요하다는 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중소기업의 기본적 시각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IT전담 부처, 필요성에 공감대
`새 정부에서의 IT전담 부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가 61.2%, 대체로 필요하다가 20.9%였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필요성`에 표를 던진 CEO들이 10명중 8명 이상이라는 얘기다.
반면, 필요치 않다는 응답은 6.0%(전혀 필요 없다 1.1%+별로 필요 없다 4.9%)에 그쳤다. IT전담 부처 필요성에 있어서는 대·중소기업 CEO간 기업규모별 응답차가 거의 없었다.
IT전담 부처의 조직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게 좋겠냐는 물음에는 독임제 독립부처가 51.%의 호응을 얻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대통령 직속(23.5%)과 기존부처 확대(11.2%)가 뒤를 이었다.
특히 위원회 조직을 꼽은 응답자는 단 4.9%에 그쳤다. `방송통신위원회`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의 기존 IT거버넌스에 대한 일선 CEO들의 실망과 그에 따른 반발이 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IT전담 부처의 업무 범위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55.2%)이 `과학기술 전담부처와 IT부처를 한데 합친 기관`이라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미래창조과학부`의 모습과 흡사하다. ICT 컨트롤타워의 재건을 바라는 일선 CEO들의 이목이 새 정부의 조각 움직임에 집중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문화관광부+방통위(26.1%)와 지식경제부+방통위(15.7%) 등을 이상적 업무 범위로 꼽는 응답도 있었다.
◇IT전담 부처, 미래지향적 어젠다 제시해야
IT전담 부처의 재건을 전제로, 부처의 주요 기능을 묻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응답이 나왔다.
1순위 응답만 추렸을 때, 29.5%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모바일 빅뱅과 같은 산업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IT산업 육성에 따른 글로벌기업 탄생 가속화(19.0%), 산업활성화를 위한 국정 어젠다 선점(17.9%), 타 산업과의 시너지 창출(13.1%) 등이 꼽혔다.
이를 다시 2순위 응답까지 합쳐 분석해 보면 `모바일 빅뱅과 같은 산업 변화에 빠른 대응` 외 나머지 응답 간 격차에 큰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IT전담 부처에 거는 기대와 요구사항이 크고 다양하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새 정부 들어 출범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IT전담 부처의 초대 수장으로 어느 분야 출신이 가장 적합하겠냐는 질문이 들어갔다. `기업인 출신`이 79.9%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반면, 관료나 교수, 정치인 등은 한자리수대의 낮은 응답률을 보였다.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는 “전문성을 강조하는 박근혜식 인사에서, 어찌 보면 가장 전문성이 담보돼야 할 자리가 IT전담 부처 장관직”이라며 “출신 분야를 애써 한정해놓고 인선을 진행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선 과정에서의 논공행상이나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져 초대 IT전담 부처 장관을 임명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