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 좌담회] "대한민국 비전, 이공계 인재에 달렸다"

◆참석자(가나다순)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다산네트웍스 대표)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교육혁신센터장)

민병주 국회위원(새누리당,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거석 전북대학교 총장

이기준 한국공학한림원 명예회장(전 서울대 총장)

이승종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강병준 전자신문 벤처과학부장(사회)

21세기는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과학기술 투자를 누가 효율적으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21세기 강대국 지위를 이어갈지가 결정된다. 하지만 최근 과학기술은 산업 경쟁력의 한쪽으로 치우쳐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과학기술이 산업 경쟁력 기반이지만 과학기술 경쟁력은 산업뿐 아니라 식량, 안보, 자원 등 국가 미래를 결정짓는 뿌리와 같다. 무엇보다 핵심 과학기술 인재양성은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전자신문이 2013년 새해를 맞아 국내 과학기술과 산업계 주요 인사를 초청해 특별 좌담회를 개최했다. 국가 미래를 위한 핵심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 발전 방향을 논의해 봤다.

MB정부 5년의 공과

◇사회(강병준 전자신문 벤처과학부장)=과학기술 중요성은 더 이상 말로 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지난 5년간 이명박(MB) 정부에서도 과학기술분야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상당한 성과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는 지적도 크다. MB 정부에 있어서 과학기술분야 공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도연(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모든 일에는 공과가 항상 공존하는 것 같다. 먼저 MB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연구개발(R&D) 예산이 대폭 늘었다. 지난 5년간 국가 R&D 예산이 11조원에서 17조원으로 50%나 증가했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그동안 R&D 투자는 산업 경쟁력 강화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데 기초과학 쪽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물론 늘어난 연구비를 좀 더 효율적으로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를 위해 국과위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교육과 과학기술 부처가 합쳐졌다.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든 인재양성인데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교육과 과학기술이 합쳐지면서 대학 경쟁력을 많이 높였다.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에서 실시한 2012년 QS 세계대학평가에서 보면 200대 대학이 2개 밖에 없었는데, 2012년에는 6개로 늘어났다. 대학 경쟁력이 연구 성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대학과 과학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대학과 과학의 결합은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해야 하고, 해야 했던 과제였다.

많은 과학기술계 인사가 과학기술부가 없어진 것에 섭섭해 하기는 하지만, 세계 어디도 과학기술부가 따로 있지 않다. 교육과 같이 간다. 좋은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민병주(새누리당 국회의원)=김도연 위원장이 얘기한 것처럼 R&D 예산이 크게 늘어난 부분은 이번 정부의 공이다. 정권 출범과 함께 약속했던 기초과학과 원천 합쳐서 R&D의 50%를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R&D 예산이 늘어난 것에 비해 연구 인력이 많이 늘지 않았다는 점은 과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 과학관련 부처가 합쳐진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두 부처가 합쳐지면서 과학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됐다. 과기부가 폐지되면서 들었던 과기계의 자괴감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상임위 평가에서 교과위가 낙제점을 받았던 것도 교육과 과학이 합쳐지면서 각종 교육 현안만 얘기하다가 과학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를 전혀 진행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취임과 동시에 출연연 책임자에 일괄 사표를 받았던 것, 출연연의 정원을 제한해 비정규직이 늘어난 부분도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기준(한국공학한림원 명예회장)=느낌은 비슷하다. 하지만 과기부를 없앤 것은 과에 해당된다. 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가 있는 나라가 없었다고 하는데, 영국과 독일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지지했는데 이는 과학기술부가 없어졌기(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 때문이다.

교과부를 만드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교육 자체의 덩치가 엄청 크고, 교육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초중고 교육행정의 상당부분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주고 나서도 이를 붙들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까지 합쳐지니 과기부가 갖고 있던 순수성이 거의 없어졌다.

물론 부처의 존재 여부는 당시에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총무처와 내무부가 합쳐지고, 재무부와 기획예산처가 합쳐지면서 각각 총무처와 기획예산처의 순수성이 사라진 것도 비슷한 사례다. 정보통신부가 없어진 것은 반대 상황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육성 등을 내걸고 정통부 부활을 얘기하지만) 오히려 정통부가 소프트웨어를 죽였다. 돈 버는 통신 쪽만 살리면서 소프트웨어가 죽었던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와서 다시 과기부를 만들어야 하느냐에 대한 과기계의 일관된 의견은 없다. 과학기술계 사람들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못한다. 국과위가 잘하고 있다면 (다른 부처와 달리) 이를 확대해 전체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위상으로 올리면 더 바람직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공무원은 안 줄이고 부처만 합치면 의미가 없다. 공무원이 국가 발전에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공무원이 앞서는 시대는 아니다. 기업 등 민간을 정부가 끌고 가기는 부담된다. 이제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해주는 게 좋다. 중국의 주룽지는 취임 당시 50여개였던 중앙부처를 30여개로 줄였다. 이것이 중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국가를 관장하는 일은 중앙정부에서 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각 성별로 경쟁하도록 한 게 중국 발전의 열쇠가 됐다.

중앙정부에서 할 것은 하고 나머지는 풀어줘야 한다. 그런데 MB정부는 그 것을 못했다. R&D 예산을 많이 늘렸는데 실제 이번 정부에서 국책 연구소가 일을 잘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연구소 장에게 권한을 안줬기 때문이다. 리더가 비전이 없고, 철학이 없으면 연구소가 어떻게 되겠는가? 또 권한을 줘도 임기가 짧으면 안 된다. 정부 산하 연구원으로 이름만 바꾼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장들이 책임지고 연구업적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연구소 장이나 연구원들이 잘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도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예산도 (늘어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누가 집행하느냐의 문제다. 과기인이 만지도록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됐다. 아직 기획재정부와 문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 과기인이 독자적으로 예산을 관리하고 사용하면 과기인이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김도연=과학기술이 특별히 우대받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나라가 너무 빨리 발전하면서 생긴 문제가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다. 과학기술계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많이 가지고 있다. 출연연에 갑자기 들려 금일봉을 주는 등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당시는 그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과기계가 지원을 더 받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를 설득하고 같이 가야 한다. 출연연 비정규직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이는 출연연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 전반의 문제다. 오히려 이는 과학기술계에서 더 노력할 문제다. 정부가 과기계만 배려하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수인재 이공계 부족

◇사회=정부부처 문제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확보가 관건이다. 우수한 인력이 산업계로 공급되지 못하면 산업 경쟁력도 잃게 된다. 현실은 수능 고득점자가 서울대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 대신 의예과를 선택한다. 삼성·애플 사례와 같은 글로벌 특허전쟁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기술혁신의 주역인 이공계 인재가 부족한 사태를 맞고 있다. 기업도 인재 영입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게 현실이다. 심각한 수준을 넘어 우수 이공계 인재 부족이 일본과 같은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가 실감난다.

결국 이런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공계 졸업생의 진로 불안정성, 그리고 처우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우수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류지성(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교육혁신센터장)=처우와 성장비전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났던 현상과 앞으로 일어날 현상이 다를 것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일반적인 것을 얘기하면 여러 조사에서도 그렇고 이공계가 직업적인 안정성이 떨어지고 성장 비전도 떨어진다. 공부한 만큼 처우도 높지 않다. 이런 것 때문에 이공계 기피현상이 왔는데 이후에도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병주=많이 얘기하는 것이 IMF때 기업체 연구소에서 이공계 연구원이 밀려 나온 일이다. 출연연에서도 많이 나왔고 기업들도 정년 단축하면서 강제 퇴직을 유도했다. 이런 점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이 이공계 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물론 IMF 이후에도 이공계 쪽 졸업생 숫자는 줄지 않았다. 매년 2만명 이상 이공계 졸업생이 배출된다. 하지만 문제는 졸업생 수가 아니라 우수한 인력이 이공계로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공계는 정말 우수한 인재들이 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법대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빠진다. 필요한 만큼 수준을 갖춘 인재가 오지 않는다는 게 현재 이공계의 문제다.

◇류지성=민병주 의원 얘기에 동의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공계 인력을 배출하는 나라다. 문제는 우수 학생이 안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대, 로스쿨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진 것도 문제다. 부풀려진 상황이 오히려 이공계 가려는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다.

◇사회=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과 여론이 오히려 악영향을 키우고 있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현실은 어떤가.

◇민병주=맞다. 평균 임금을 따질 때 1등이 의료지만, 2등이 공대 쪽이다. 이런 통계는 물론 취업기회나 장학금 혜택 등 좋은 내용은 오히려 잘 안 알려진 점이 있다. 사회 전반에서 이쪽에 가면 미래가 있다는 느낌(분위기)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기준=이공계 위기는 과장된 경향이 있다. 최근 삼성전자 임원은 오히려 이공계 출신이 많다. 과거에 없었다고 하는데 미국 잭 웰치 등 최고경영자(CEO) 중에는 이공계 출신이 많다. 미국도 엔지니어 평균 연봉이 법률가보다 높다. 단지 문제는 우리가 이공계 교육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처럼 CEO 등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데 잘못하고 있다.

◇민병주=100대 기업 CEO를 분석해 보면 2006년 이전까지는 상공계열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2009년 이공계가 56%로 늘었다. 오히려 상공계열은 22% 미만으로 줄었다. 이제 이공계 기피, 홀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100대 기업의 CEO 비율과 같은) 좋은 자료를 보여주면서 이공계의 비전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류지성=초중고 교육도 바꿔야 한다. 어릴 적부터 이과, 문과로 나누는 것부터 고쳐야 한다. 이과는 수학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기피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직업, 미래 비전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없다. 대학 입시중심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요즘 직업 형태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비전을 갖췄는지를 얘기해 줘야 한다. 모르니까 아직도 의대, 법대가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 대부분 학생이 대학이나 전공을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대부분 부모나 학교에서 가라는 대로 간다. 학부모는 미래 직업 트렌드를 못 보고 현재 잘사는 직업만 본다. 이 때문에 길을 잘못 들고 후회하는 학생들도 많이 나온다.

◇김도연=언론 등 사회전반에서도 이공계 기피라는 말을 안 썼으면 한다. 이공계 우수인력 부족 등의 말이 더 합당할 것 같다.

◇서거석(전북대학교 총장)=이공계 기피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렇게 되면 접근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이공계 기피라는 말을 다른 말로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뿌리는 사농공상이라는 관념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이공계를 멀리하는 것은 IMF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과학기술 인력이 많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보내거나 갈 곳이 아니라고 마음이 각인됐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진학할 때 가장 큰 기준은 역시 `경제적, 밥그릇의 문제`다. 신분의 안정성, 사회적·경제적 장래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수한 인력의 이공계 유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보면 우리 대학만 그런 것은 아닌데. 인문사회계 쪽은 전북지역에서 웬만한 학생은 못 들어온다. 하지만 이공계는 그렇지 않은 학생도 온다.

우수인재뿐 아니라 전체 학생이 이공계를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인규명과 정확한 처방이 필요하다. 사회 전반의 인식 대전환이 필요하다. 걱정 차원에서 이공계 기피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피를 심화시키는 역기능도 하고 있다. 매스컴에서 신중하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집중 조명을 해서 다른 나라 극복 사례, 그런 전례가 없어도 잘하고 있는 나라의 풍토, 메커니즘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부수적인 문제이지만 이공계에 대한 투자도 더 해야 한다. 출연연 등 국가기관에 대한 투자는 파격적으로 늘었지만, 대학에 대한 이공계 투자는 거기에 비해 미흡했다. 실험실, 실험 기자재 등 10~20년 전이랑 비슷하다. 여기에 대한 투자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참 이공계 육성할 때 장학금 일정부분을 이공계에 먼저 주고, 나머지를 인문사회계에 배정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상당부분 교과부의 통제를 받고 있어 대학에서 잘 안 된다. 파격적 장학금이 필요하다. 일부 대학원생에 대한 병역특례 등도 생각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이공계 채용 할당제도 생각해 볼만 하다.

◇류지성=다른 측면을 얘기하려고 한다. IMF때에 이공계 구조조정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 이상으로 문과쪽 출신도 힘들었다. 유독 이공계만 홀대를 받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필요하다. 인문사회계는 오히려 장학금, 병역혜택 등이 없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거의 다 이공계만 뽑는다. 절대 다수다. 이들이 CEO가 되고 임원이 될 것이다. 지금 대기업 임원은 변호사, 의사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다. 재능만 있다면 회사 CEO가 되는 게 좋다.

◇민병주=스포츠 선수, 연예인 연봉을 얘기하는데 큰 그룹 CEO들의 연봉도 연예인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사로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체능계 평균 연봉이 제일 낮다. 성공한 1~2명을 보고 학생들이 가려고 한다.

◇남민우(벤처기업협회장·다산네트웍스 대표)=각자가 일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 자체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공계 기피현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30년 전에는 안 그랬다. 현재 우수인력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현실인데 평균을 보고 얘기하면 안 된다. 산업화를 진행하던 이전 시대에 필요했던 이공계 인력은 단지 생산현장(공장)에서 필요한 인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이공계 인력은 고급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핵심 중 하나는 교육현장에서 이런 수요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늘어나는 (고급 R&D 인력) 수요에 교육계가 대응해 왔다면 이런 얘기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거나 언론에서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는 것을 자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에서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10만명 중 4만명이 R&D 인력이고, 예산의 반을 R&D에 쓰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상황은 다르다.

우리 회사는 국내에서 대졸 공채를 포기하고 2년 전부터 특성화고로 돌렸다. 대졸 인력 자체도 구하기 힘들지만 (대졸이든 고졸이든) 어차피 입사 후 3년은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특성화고 학생을 뽑아 훈련시키고 가능성이 있다면 회사에서 대학교육을 시키면 된다는 생각이다. R&D 인력에 대한 수급도 해외로 돌렸다. 베트남에서는 하노이공대생 등 우수 인력들이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우리 회사(다산네트웍스) 같은 한국기업 입사를 굉장히 희망한다. 이전에 한국의 우수인력들이 IBM 등 외국기업에 입사하려고 했던 것과 같다. 현지 학생은 한국회사에 들어가는 것, 한국 유학 오는 것이 꿈이다.

우리 회사는 중국 시안이나 심천에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교육계, 사회가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 현재 교육, 사회 구조는 일자리 창출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평균적인 공대 학생들의 처우에 대해 이해를 하지만, (현상에 집착하면) 눈에 보이는 소수에 관심이 쏠리게 되어 있다. 정말 우수한 인력들이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좀 더 많은 연구와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

◇민병주=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 졸업생은 초과 공급, 대학원 졸업생은 모자라는 것으로 나온다. 시장에서는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원 졸업생만 선호한다는 결론이 남는다. 결국 문제는 전문대, 대학교다.

◇사회=이를 위해서 민간은 물론이고 정부도 많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승종(한국연구재단 이사장)=대학에 오래 있었는데 이공계 문제는 15년 전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960~70년대 개발연대 시기에는 이공계의 사회적 대우나 취업률 등 모든 지표가 다른 나라보다 좋았다. 그런데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IMF가 오면서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IMF를 겪으면서 충격의 정도가 인문사회 분야보다 컸다. 또 이런 충격이 언론을 통해 반복되면서 증폭된 경향이 있다.

이후 이런 현상이 전혀 회복되지 않고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여러 대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현재 정부는 R&D와 연계된 다양한 인력양성 사업을 하고 있다. 대학원 중심의 고급 인재 양성을 위한 사업이 많다. 2011년부터 글로벌 펠로십을 시작했고 올해도 일부 추가될 것이다. 올해 이공계 전체에서 500명이 지원을 받고 있다. 학비+생활비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2단계 BK21 사업 등도 계속 진행한다. 후속사업도 기획이 되어 있다. 현재 정부예산 2915억원이 배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미래 기초과학 핵심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도 진행한다.

초중고 교육문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문과, 이과 등이 법적으로 없어졌지만 대학 입시와 연계되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이과생은 문과 소양교육을 등한시 하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심각하다. 이공계 전문지식은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과 경쟁하기 힘들다. 라이프 타임이 짧다. 인문계열 교수 등은 연배가 올라갈수록 관록, 경험이 더 중요하다. 60~70대에도 대우를 받는다. 이공계 50대 후반이면 역할이 힘들어진다. 이공계 인생 2모작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럴수록 인문사회분야 등 경영교육을 착실하게 받아서 50대 전반 이전에는 이공계 지식, 이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관리, 서비스 등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초중고 교육이 바탕이 돼야 한다.

◇김도연=이공계 르네상스를 추진하고 있다. 1~2개의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 어마어마한 정책을 세웠다. 이공계 대책을 각 부처에서 다 모아보니 60개가 된다. 80%가 대학가는 세상, 이중 40%가 이공계다. 대학 30만명 졸업하고 3만 몇 천명이 자연계, 7만 몇 천명이 이공계. 의사를 하려는 인원은 1년에 2000명 밖에 안 된다. 절대 배출 인력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사회의 요구가 있으면 이공계를 가려고 할 것이다.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면 시간이 걸려도 해결될 것이다. 먼저 대학의 인력양성이 문제다. 이공계 측면에서는 출신을 줄여서 값을 높여주어야 한다. 또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 내의 전문지식 뿐 아니라 도전정신, 창업 등 교육의 도전성을 키워야 한다. 공대나 자연대는 특히 그래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을 통해서는 잘 안나온다. 창업, 중소기업 지원 등이 필요하다. 또 학생들도 활동 무대를 외국으로 넓혀가야 한다. 도전해야 한다.

◇남민우=벤처 르네상스라는 표현도 쓴다. 2000년대 벤처붐을 재연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현재 이공계 문제는 졸업 인력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언밸런스, 미스매치 문제다. 나쁜 자리가 아닌데도 공장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 중견, 중소기업은 일자리 기근이다. 제조분야는 해외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규모를 늘려달라고 하고, 해외에서 싼 고급인력을 구한다.

사회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기업이 필요한 교육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미스매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삼성이 성균관대를 키운 것은 잘한 것이다. 웬만한 대학은 기업이 인수했으면 좋겠다. 다산도 매년 100명 정도 키울 수 있다. 현재 특성화고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은 대학도 보낼 것이다.

◇민병주 의원=새누리당에서 말한 창조경제에 앞서 말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미래 지속적인 성장과 국민 행복을 위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일자리 창출, 고용 기여를 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연구원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 과학계 인사에 대한 예우, 이공계의 안정적 인력 수급 등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기준=이공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반적인 교육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고등학교 교육에서 공학을 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공대 쪽에는 여성 인력이 거의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 이공계 교육에는 돈이 들어간다. 미국도 사립대 공과대를 지원하는 것은 주 정부에서 하고 있다. 코넬대 등이 그런 경우다.

다른 나라들이 대부분 새 학기를 가을에 시작하는데 일본과 한국만 3~4월에 한다. 해외 나가거나 유학생 유치하는데 엄청난 낭비를 하는 것이다. 글로벌 표준을 따르는 기업들의 입장과도 상반된다.

학생 AS도 필요하다. 리더십이라는 것이 미래를 보는 안목과 실천력이다. 과학기술 마인드가 플러스 되어야 하는 이유다. 과학기술 마인드는 합리성, 혁신을 강조하고 미래 지향적이다. 노벨상을 타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노벨이나 에디슨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 교육정책은 순서가 맞지 않는다. 교육은 인풋보다 아웃풋 위주로 해야 한다. 훌륭한 졸업생이 좋은 것이지, 성적 좋은 학생이 들어가서 가치가 높아지지 않고 졸업하면 안된다.

◇사회=바람직한 이공계 인재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통섭형 인재 등 여러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미래 산업,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미래 인재상에 대해 얘기했으면 한다.

◇류지성=삼성전자에 몇 군데 물어봤더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 엔지니어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뀌어 있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개발하는 인력은 많이 줄었다. 오히려 기계공학을 하는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 기계공학을 하는 사람들이 공장에서 설비를 만지는 인력 같지만, 사실은 첨단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인력이다. 컴퓨터 사이언스를 다루는 것보다 더 많은 소프트웨어 지식이 필요하다.

앞으로 사회는 어느 한 전공분야가 아니라 확장성이 좌우한다. 과학기술이 중요해지는 미래 사회는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이런 바탕에 예술적 감각을 더한 확장성을 갖춘 인재가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 특허전쟁만 봐도 순수하게 법을 한 사람보다 이공계 지식을 갖춘 법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 사람들 아니면 안된다.

의대도 그렇다. 앞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바이오, 의공학 등이 더 부각될 것이다. 우리가 개척해야 할 남아 있는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다. 수술 로봇을 개발할 때 의사가 있어야 한다. (우수인재가 의대를 간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이런 인력을 연구자로 돌려서 이들의 재능을 산업을 위해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진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향후 이공계 롤모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기술 진부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교육, 기술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굉장히 얕다. 이를 해야 한다. 정부, 대학이 같이해야 한다.

◇남민우=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런 것이 요즘 얘기하는 융합형 인재다. 나도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지금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들도 산업현장에서 3년 이상 교육을 시켜야 한다. 대학은 융합형 인재를 위한 기초·기본 지식을 가르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이후에 맞춤형 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 물론 수요자가 참여하는 개방형 교육으로 가야 한다.

비용이 들어간다면 기업이 부담하는 게 좋다. 기업도 오픈 이노베이션이 유행하고 있다. 교육계도 이런 개방형으로 가는 것이 답이다. KAIST 등에서 기술경영과정인 MOT를 운영하는 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기업에 있던 사람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교육을 해서 다시 사회로 섞이는 것이 급변하는 시장의 수요를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승종=융합형 이공계 인재상으로 표현하고 싶다. 이공계 전문지식 뿐 아니라 이공계 안에서도 접점에 있는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융합형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소통 기술이다. 다른 사람하고의 관계, 이들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공계 인재상에서 소통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공계 사람들이 그동안 많이 약했던 사안이다.

◇서거석=후진타오 시대에 70%가 이공계 출신이었다. 이공계 출신이 공직에 더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융합형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 대학에서 이공계 쪽 기초 교양교육을 더 강화할 수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전공보다 교양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 중·고등학교 이과, 문과 벽을 허물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인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도연=초중등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공무원, 교사 등이 수위에 있다. 굉장히 중요한 직업이지만 이러면 안된다. 남들과 다른 꿈을 꾸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이공계 인재가 긍지를 잃는 게 문제다. 긍지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제도, 교육에서 이공계 사람이 긍지를 갖도록 해야 한다. 이공계 교육이 전문성이 강조되다보니까 자기 분야만 생각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만큼 다른 분야를 배려하는 인재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리=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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