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설비 투자 축소가 주식시장에서는 분야별로 엇갈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간 과잉설비투자로 가격 하락 압력에 시달렸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장치산업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장비 업계 실적 회복은 더디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9일 기업들이 내년도 투자를 줄이거나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잡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투자 축소가 주식시장에서 일부 주주가치 회복·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최근 정부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내년 투자를 대부분 축소할 움직임이다. 설비투자 축소는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3분기 설비투자는 전기 보다 4.8% 감소했고 전년동기 대비 6.5% 줄었다.
한국은행이 밝힌 설비투자 전망도 지난 9월 반짝 상승한 후 매달 떨어지고 있다. 건설투자 역시 주택시장의 회복 지연으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미분양이 지속되면서 지난 10월 주택매매거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2% 줄어드는 등 하락세가 이어졌다. 정책금융공사 조사에서는 내년 기업 설비투자 규모가 총 127조원으로 올해 잠정치 보다 1.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기업의 설비투자 축소는 증시 전반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업이 설비투자를 줄이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그만큼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라며 “수요 위축은 기업의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경제에도 부정적인 요인이다. 김 팀장은 “설비 투자 축소는 고용과 내수 부진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국민 경제에도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주식시장 측면에서 산업별로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IT 대기업은 과당 설비 경쟁으로 인해 기업 이익이 대거 축소됐다”며 “치킨게임이 종료되면 D램 및 패널 가격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의 투자 축소는 관련 장비 업계에는 부정적인 요인이다.
김영우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시설 투자 축소에 이어 내년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지면 관련 장비 업체 실적에는 지극히 부정적이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들이 유보금을 대거 확보한 상태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투자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대내외 경제 불안요인으로 사내 유보금을 지속적으로 키워 314조원에 이른다”며 “국내 요인이라도 완화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