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조주의에 가깝다. 근본주의라고나 할까. 이번에는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의다.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의에 뒤이은 움직임이다. 한문 신봉주의자들의 주장이 창조론자들의 그것을 닮았다. 논쟁 자체가 특수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교조주의가 무엇인가. 교조주의는 신앙이나 신조에 입각해 도그마만을 고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흔히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할 때 쓰이곤 한다. 주어진 이념 노선과 원칙을 실천적 검증 없이 신봉하려는 태도다.
기원은 스콜라 철학이 유행하던 중세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나 불교·유교에서 근본주의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흔히 자구에 매달리는 사람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종교 쪽에서 종종 발현된다. 소승불교·성리학·개신교 일단이 그렇다. 비과학적·독단적·기계적·맹신적이다. 그러다 보니 기득권이 선호한다. 지배계층에 유용한 사상이다. 교회 세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의가 갑자기 국어기본법의 한글전용정책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최근의 일이다. 전직 총리와 쟁쟁한 인사들이 가세했다. 요지는 이렇다. 한자도 국어인데 한글만 국어로 사용하라는 한글전용정책이 실질문맹을 양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자병행정책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다. 초·중·고교의 국어 교과서에서 한자 교육을 배제한 것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한자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박탈한 탓이다. 한자를 가르치고자 하는 학부모의 교육권도 침해했다. 무엇보다도 2000여년간 써온 한자의 역사·사상·문화·전통과 정체성을 저버렸다. 한글은 향찰·이두·구결과 같은 한자의 표기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한자를 쓰지 않는다고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주장은 허구다. 21세기 우리 국민 치고 한글로 의사소통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서당 출신의 한문세대는 불편할 수 있다.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운 세대도 불편할지 모른다. 한글세대에게 한자어가 어렵다면 쉬운 한글로 풀어쓰면 그만이다. 첨단 모바일 시대의 한글은 문자올림픽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인정도 받았다.
전통문화 계승과 문화교류를 위해 굳이 왕조실록이나 중국 고대 서적을 직접 읽어야 할까. 쉽게 풀어쓴 번역서를 읽으면 될 법하다. 학습권이나 교육권을 논한다면 사설 한자 학원도 많다. 대학에는 해당 학과도 있다.
문자가 경쟁력인 시대다. 한자를 표기하려면 먼저 알파벳으로 입력하고 자동변환 방식을 이용해 한자로 변환해야 한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자유자재로 결합해 알파벳보다 직관적이고 효율적이다. 한글의 투입 대비 생산성은 한자의 수십 배다.
스마트폰 자판에서 제대로 소화도 되지 않는 한자를 굳이 쓰자는 얘기는 문자 특권주의가 통했던 `최만리` 시절에나 통할 얘기다. 왜 이 땅의 `최만리들`은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못하고 문자 기득권이 통하지 않는 IT강국에 태어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일까.
조선시대 `최만리들`은 중국에 사대하며 기득권을 인정받으려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어를 수용하며 창씨개명까지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완성하기 위한 기득권적 문자 사대주의자들의 수순으로 봐도 될까.
조선시대에는 한글을 언문이라며 천대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어를 쓰자고 했던 그들이다. 이른바 뿌리론이다. 풍부한 문자 생활이나 전통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한자를 공교육 대상에 포함하자고 하는 `최만리들`의 주장은 그래서, 교조주의적 문자 사대주의의 시작이 아닐지 걱정된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