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동발전(사장 장도수)은 2009년부터 4년 가까이 공급망관리(SCM) 체계 고도화에 힘써왔다. 연료가격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연료가격예측시스템을 비롯해 배선관리·연료설비·저탄장관리시스템 등을 구축하고 이를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과 연계해 경영성과를 높이고 있다.
연료종합전략실인 `워룸`에서는 세계 유연탄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실시간으로 수급상황을 모니터링한다. 남동발전은 이를 바탕으로 가격 예측 정확도를 높였고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저 수준 유연탄 조달단가(95달러/톤)를 달성했다. 예산 대비 약 14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SCM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연료 구매는 남동발전 핵심 역량
남동발전이 SCM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말 삼성코닝 출신의 장도수 사장이 부임하고 나서부터다. 시스템 경영, 원가 개선 등을 중요시하는 장 사장은 부임 직후 남동발전 연료팀에 연료 SCM 구축을 지시했다. 유연탄 구매부분이 남동발전의 차별적 역량 중 핵심이라는 게 장 사장의 신념이다. 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도화된 SCM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남동발전에는 SCM 체계 확립을 책임질 전문가가 없었다. 대부분이 SCM의 개념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삼성코닝 SCM 전문가를 불러 강연을 하고 이후로도 질의응답을 통해 지속적인 학습을 진행했다.
벤치마킹도 추진했다. 대한항공, 에스오일 등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대만전력과 J파워 등 해외 기업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도 연료(유연탄)에 특화된 SCM 기능은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일반 자재는 규격화가 용이해 발주·계약·제작·품질관리 등 일관 관리가 손쉽다. 하지만 연료는 규격화도 어렵고 기후나 환경 등 변수에 따른 영향이 크다. 매년 열리는 국제 연료처장회의에서도 확실한 해답을 얻기는 힘들었다.
남동발전은 고민 끝에 ERP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자체적으로 SCM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2009년 9월부터 남동·서부·남부발전 등 발전 3사가 공동으로 ERP시스템 구축을 시작했다. 남동발전은 이 프로젝트에서 SCM 초기 모델인 수급·배선 프로그램을 구축해 ERP와 연계했다. 연료 조달·공급과 선박 운항을 관리할 수 있는 기본 체계가 마련됐다.
조석진 한국남동발전 연료팀장은 “초기 SCM 체계를 구축할 당시엔 사내 전문가도 부족했고 연료 특화 SCM을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다는 점이 큰 도전사항 이었다”면서 “일단 초기 SCM 체계를 갖추고 나자 후속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급망 전체의 시스템화 추진
남동발전은 2010년 시스템 경영 컨설팅을 통해 연료구매 부문 시스템화라는 과제를 도출해냈다. 효율적인 연료 구매를 위해서는 시황 예측에 근거해 입찰·협상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운임평가 시뮬레이션과 탄종별 가격차에 따른 경제성 비교 프로그램 등을 아우르는 통합 연료가격 예측시스템이 필요하다.
남동발전은 2010년 말 연료구매 지원시스템(현 연료가격 예측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아시아 석탄시장을 대표하는 `GCI(Global Coal Index) 호주탄` 가격 예측, 주요 변수(석탄·유가·환율·선박 등)에 대한 예측가격의 민감도를 분석하는 시뮬레이션 기능을 제공한다.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돕는다.
지난해 5월엔 연료종합전략실 `워룸`을 구축했다. 워룸은 남동발전 SCM의 두뇌 역할을 하는 곳이다. SCM을 이루는 모든 단계별 데이터가 워룸에 저장되고 모니터링된다. 워룸은 4개 분야 65개 지표에 대해서 일일·주간·월간 단위로 파악한다.
5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료 수급 상황과 선박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또 향후 3개월 간 시황 예측, 일일 재고수준 변동 예측, 발전소별 전일 호기별 소비량과 소비열량 파악 등이 가능하다.
조 팀장은 “유연탄 비용은 회사 비용의 59%, 총 연료비의 78%를 차지하기 때문에 유연탄 조달 성과는 경영성과의 핵심 요소”라면서 “가격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급격한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워룸의 구축 목표”라고 설명했다.
남동발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생산지 정보와 저탄장 관리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공급망 전체의 시스템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SCM의 적용 범위가 선적과 하역까지에 그친다면 향후에는 인도네시아 등 생산 현지에서 내륙운송, 선적까지 과정도 시스템화할 계획이다. 하역부터 보일러에 급탄하는 과정(저탄·상탑·급탄)은 이미 시스템화가 진행되고 있다.
◇SCM 상품화가 궁극적 목표
남동발전은 현재 연료가격 예측시스템 2차 고도화 및 수급·배선시스템 고도화, 연료공급자 관리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연료가격 예측시스템은 미래변수(경기선행지수)를 반영한 시스템으로 성능을 개선하고 시장상황 변동에 따른 예측 모델을 재산정할 계획이다. 연료공급자 관리시스템은 일종의 평가시스템으로 공급자의 계약 수행 능력이나 유연탄의 탄질 등을 평가한다.
남동발전은 연료 조달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까지 중장기 경영전략계획을 수립했다. 글로벌 수준의 연료 조달 역량을 보유했지만 국제 가격 변동성이 심화되고 수급불량 요인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개별 시스템 간 연계성이나 IT환경변화 반영 수준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엔 최적 배선시스템을 개발하고 연료 모바일 지원시스템도 구축한다. 최적 배선시스템은 선박과 선적항, 하역항, 항로, 공급사 등 주요 변수에 따른 비용과 제약 조건을 고려해 최소 운송비용을 계산해준다. 이 결과에 따라 최적의 배선을 도출할 수 있다. 모바일 지원시스템은 연료정보의 공간·시간적 제약을 해소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게 목적이다.
남동발전은 이후로도 매년 각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2017년 이후엔 연료 공급망 통합관리시스템을 상품화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남동발전 내부에서 성능을 높인 이후 사용자 편의성을 높여 상품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조 팀장은 “올해까지가 SCM 도입기라면 내년부터 2015년까지는 정착기, 그 이후 2020년까지는 고도화기로 볼 수 있다”며 “SCM이 남동발전 경영 효율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고도화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