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환경 변화에 휩싸였다. 단순히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나 과거와 달라진 시장 주기 정도가 아니다. 미래 예측 불가능성이 혼미한 지경을 넘어 앞을 분간할 수 없다.
달라진 징후가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먼저 양극화를 넘어 극단적인 시장 쏠림 현상이다.
대다수 제조업이 경기 침체에 허덕이고 있지만 유독 스마트기기 시장, 그 가운데서도 삼성전자와 애플만이 `나홀로 고공비행`이다. 현대기아차가 잘한다고 하나 이는 상대적인 성적표일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애플의 공급망에 포진한 후방 산업군의 실적은 연일 기록 경신이다. 부품·소재·설비 업종에서 양사 협력사들이 거두는 호실적은 지금 경제 상황에 착시 효과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노키아가 그랬듯 두 회사가 언제까지 승승장구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산업에는 공급망이라는 생태계가 있는 법이다. 전후방 연관 산업군이 동반 성장하고 건전한 경쟁이 활발히 펼쳐지는 생태계가 바람직하다. 시장에서 특정 기업의 지배력과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커진다면 그 생태계가 언제 양날의 칼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둘째, 중국발 리스크가 한층 고도화된 방식으로 다가왔다. 세계 최대 시장이자 생산기지, 자본 보유국인 중국은 불황도 개의치 않고 제조업 투자를 감행한다. 특히 발광다이오드(LED), 액정디스플레이(LCD), 태양광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는 막무가내식 투자다. LED·LCD·태양광 시장을 공급 과잉으로 몰아가 나락에 떨어뜨린 대표적 요인이다. 정상적인 경제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시황은 안중에도 없는 이 같은 움직임은 첨단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이른 시일 안에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스마트폰 등으로 영역 확장도 이미 시작됐다.
그 연장선으로 우리나라에 신종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는 세 번째 변화다.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기대 이상의 시장 수요가 생기지 않는 한 당분간 대규모 국내 설비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첨단 기술로 꼽히는 대면적 LCD 패널 공장과 10나노미터(㎚)대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을 중국에 진출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품·소재·설비 등 국내 후방 산업군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존법을 모색해야 하는 배경이다.
세 가지 변화 나열은 너무 단순한 시각일 수 있다. 결코 논리적이지도 범주적이지도 않다. 솔직히 예측과 결론, 심지어 가치 판단조차 내리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감지된 제조업의 변화가 고용 문제를 비롯해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피할 수 없는 변화라면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 제조업의 미래를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때다.
서한 소재부품산업부장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