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지구촌이 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진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정보화 기반의 새로운 산업을 형성하고 개인 삶의 모습까지 송두리째 변화시킨 촉매제다.
해외 컴퓨터 시장이 커지자 1970년대 후반부터 많은 대기업이 외산 제품을 국내에 수입·유통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특히 1980년대에는 국산 컴퓨터 시장이 본격 형성될 것으로 내다보고 수입 유통과 국산 제품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예가 많았다.
당시 벽산그룹, 동아무역, 금호실업, 대한전선이 판매대행사업을 시작했으며 선경은 1977년 일본전기(NEC)와 합작사 설립을 추진했다. 금성통신, 삼성전자, 동양정밀, 대우그룹, 쌍용그룹도 해외 파트너를 물색했고 OB그룹은 미국 DEC와 손잡고 컴퓨터 조립 생산에 돌입했다.
이처럼 국내 컴퓨터 시장이 급속한 확산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1981년에 첫 국산 PC가 선보였다. `대한민국 1호 벤처기업` 삼보전자엔지니어링(현 삼보컴퓨터)이 선보인 `SE-8001`이다. 이듬해 `트라이젬(TRIGEM) 20`을 선보이며 컴퓨터 대중화를 선도했다.
국내 PC산업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정부가 추진한 `8비트 교육용 컴퓨터 개발사업`이 주효하다. 당시 정부는 컴퓨터산업 기반을 조성하고 향후 도래할 정보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실업계 중·고교를 대상으로 저렴한 소형 컴퓨터를 대량 보급하기 위해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주도로 삼보컴퓨터, 삼성전자, 금성사, 동양나이론, 한국상역 총 5개 기업이 국산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다.
1983년 선보인 삼보컴퓨터의 8비트 컴퓨터 `트라이젬 20XT`, 삼성전자 `SPC-1000`, LG전자 `GMC-3110`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하면서 대중화의 서막을 올렸다. 컴퓨터 가격이 낮아지면서 회계용 언어 코볼, 과학계산용 언어 포트란을 배우려는 수요도 급증해 수많은 컴퓨터학원이 생겨나기도 했다.
정부의 교육용 컴퓨터 개발사업 성공은 국산 컴퓨터산업이 성장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1983년에는 25개 기업이 창업할 정도로 컴퓨터 생산이 본격화됐다.
1980년 900만달러, 1983년 2억7000만달러 산업 규모를 형성하는 등 연평균 60%씩 성장한 국내 PC산업은 1989년 전자산업 중 생산의 11.8%, 수출의 13.1%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연간 PC 생산량의 80%를 수출하는 PC 강국 대열에 올라서기도 했다. 수많은 벤처기업이 PC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선보였으며 PC방, 소호 등 새로운 산업도 창출했다.
이후 1987년 행정전산망 사업, 교육용 컴퓨터 보급 확대 정책으로 대기업들이 잇달아 시장에 진입해 시장은 더욱 커졌다. 8비트에서 16비트, 32비트 PC가 시장에 꾸준히 등장했고 해외 유수 기업들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 국내 PC산업은 인터넷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신문, TV, 라디오에 이어 `제4의 미디어`로 불리며 복합형 정보단말기로 진화했다. 정보화사회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자상거래, 포털, 콘텐츠 등 다양한 인터넷산업이 등장했다. 인터넷전화, 영상회의 등 데이터와 음성을 결합한 새로운 통신 모델도 등장했다.
동시에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외산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점차 위기를 맞았다. 세계 PC산업이 불황을 맞으면서 빠르게 가격이 하락하고 시장 개방으로 외산 PC가 국내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면서 업계는 어려움에 빠졌다.
실제로 1993년과 1994년 국내 PC 시장을 살펴보면 해외 4대 기업인 IBM, 애플, 컴팩, 삼성HP의 국내 시장 성장률과 점유율은 독보적이다.
당시 이들 4대 기업의 성장률은 84.4%였으며 국내 시장 점유율은 7.2%에서 11.5%로 늘었다. 반면에 국내 5대 PC기업인 삼성, 금성, 대우, 현대, 삼보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6.7%로 전년 대비 16.7% 증가하는데 그쳤다.
중견·중소 PC기업과 용산 조립기업의 상황은 더 악화됐다. 큐닉스, 뉴텍코리아, 내외반도체는 시장 점유율이 9.3%에서 8.4%로 하락했고 용산 조립기업들은 -0.9%로 역성장했다.
내외반도체, 연합기기 등 중소 전문업체가 60% 이상 점유해 온 노트북PC 시장도 대기업과 해외 브랜드들이 공략 채비를 서두르며 위기를 맞았다.
삼성전자는 PC사업 진출 5년 만에 데스크톱PC `그린PC`의 인기에 힘입어 1995년 국내 시장 점유율 25%로 1위를 기록했다. 이후 미국 진출을 위해 현지 PC기업 AST를 인수해 합작회사를 세웠으나 1998년 IMF로 인수 5년 만인 2001년에 합작사를 정리했다.
삼성전자는 노트북을 앞세워 영국, 독일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PC사업을 다시 전개했다. 생산량이 늘면서 2005년에 중국 쑤저우로 생산거점을 옮겼다.
LG전자는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32비트 PC가 대중화되면서 1991년 국내 최초의 32비트 노트북 `NT-386-1`, 1992년 486 노트북 `CNC-425C`를 개발하며 시장에 대응했다. 그러나 외산기업들의 공세가 워낙 거세 1996년 IBM과 `LG-IBM PC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공동브랜드로 노트북, 데스크톱PC, 서버, 관련 주변기기 등을 생산·판매하게 된다.
노트북 시장에서는 2003년 `엑스노트` 브랜드를 출시한 뒤 9개월 만인 2004년 2분기에 HP를 따돌리고 시장 2위(14%)를 달성했다. 2002년부터 중아지역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에 불을 댕겼다. PC사업 추가 투자를 위해 2004년 LG-IBM PC사업부를 분할해 엑스노트와 멀티넷(데스크톱PC)사업만 새롭게 추진하게 됐다.
삼보컴퓨터는 노트북 브랜드 `에버라텍`, 데스크톱PC `드림시스` 시리즈로 연매출 1조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며 호주, 멕시코, 대만 등에 현지법인과 생산기지를 설립하고 세계에 PC를 수출했다.
그러나 PC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고 대만과 중국업체들의 저가 제품이 빠르게 시장에 유입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 부진을 겪었다. 결국 2005년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2007년 상장폐지됐다. 올해 창업주 일가인 나래텔레콤에 최종 인수됐다.
2005년에는 현대멀티캡과 현주컴퓨터도 부도를 맞았다. 중견 PC기업으로 돌풍을 일으켰으나 PC 시장 침체, 경쟁 심화 등으로 경영난을 겪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