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 부족 때문에 스마트폰 사진 지울 필요 없다”...포스텍, 광 데이터 저장기술 개발

포스텍(POSTECH)은 박경덕 물리학과·반도체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기존보다 수십만 배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광 데이터 저장 기술을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스마트폰 사진 한 장 용량은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커졌다. 초고화질 영상은 더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서비스 확산으로 생성·처리되는 데이터까지 늘어나면서, 저장 공간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하드디스크나 USB 등 기존 장치들은 전기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한 칸(셀, cell)에 '0'과 '1' 두 가지 상태로 정보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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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구연정 박사, 통합과정 김수정 씨, 이형우 박사, 통합과정 문태영 씨, 박경덕 교수.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려면 정보 저장 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한 칸의 크기를 줄이다 보면 전기적 간섭과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빛을 활용한 광 저장 기술은 빛이 퍼지는 성질 때문에 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 수준까지 집적도를 높이기 어렵다는 제약이 있었다.

연구팀은 반도체 내부에서 빛과 전자가 결합해 형성되는 입자인 '엑시톤(exciton)'에 주목했다. 엑시톤은 빛의 특성과 전자의 특성을 모두 가진 입자다. 이 입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조절하면 하나의 저장 셀에서 여러 단계의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신호등이 빨강, 노랑, 초록 색깔에 따라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듯, 엑시톤 발광 밝기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하나의 셀에 두 가지 이상의 정보를 담는 방식을 고안했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금속-절연체-반도체'를 쌓아 올린 나노 터널 접합 장치를 만들었다. 이 구조에서 전하 이동을 미세하게 조절하면 엑시톤이 또 다른 입자 상태로 변하면서 빛의 세기가 달라진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약 60㎚ 크기 단일 셀에서 세 단계 이상의 발광 상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또 저장층 두께를 15㎚ 이하로 얇게 만들어, 소자를 더욱 촘촘히 쌓을 수 있는 기반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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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톤 기반 다중 비트 데이터 저장을 묘사한 그림(국제학술지 'ACS 나노' 표지)

연구팀이 이번에 개발한 기술의 핵심은 정보를 '빛의 세기'가 아니라 반도체 내부 입자의 '물리적 상태'로 저장한다는 점이다. 빛을 이용해 비접촉 방식으로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어 장치의 마모와 손상을 줄일 수 있으며, 기존 광 데이터 저장 기술이 가진 근본적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는 데이터 저장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논문 제1저자인 이형우 박사는 “기존 기술이 저장 공간의 확대에 의존했다면, 이번 연구는 빛의 세기가 아닌 반도체 내부 엑시톤의 상태 자체를 정보 단위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며 “향후 데이터센터와 AI 서버,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 스마트 기기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될 경우, 저장 기술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에 사용된 2차원 반도체 물질의 제작은 성균관대 김기강 교수팀, 결과 분석은 펜실베니아대 딥 자리왈라 교수팀이 참여했으며, 포스텍 주희태·문태영·구연정·김수정 씨가 측정 연구를 함께 수행했다. 한국연구재단과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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