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이란 말이 정치권에 등장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승자독식 경제구조 개혁을 말할 때마다 나오는 단어가 바로 상생이다. 하지만 단기 이슈 제기에만 그쳤을 뿐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부족했다. 대기업 중심 경제성장으로 산업 중추인 중소기업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문제의식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최고조에 달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도 대기업은 꾸준한 성장으로 천문학적 이익을 올렸지만 중소기업은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렸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영역 확장도 우리 사회 상생기조 강화에 단초가 됐다. 대형 유통업체의 기업형슈퍼마켓(SSM)과 프랜차이즈 빵집 진출은 골목상권을 파괴한다는 지적과 함께 상생 필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왔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과 승자가 독식하지 않고, 패자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공정사회`를 강조하며 상생 논의에 불을 댕겼다. 이후 9월 정부는 △법·제도적 기반 마련 △동반성장 문화 확산 △불공정 하도급거래 시정의 3대 핵심과제를 골자로 한 동반성장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세간의 우려와 기대 속에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하는 상생의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전담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 수장은 정운찬 전 총리가 맡았다. 그는 위원회 출범 한 달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급격한 고도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IMF를 겪으며 양극화 심화와 중산층 붕괴 상황을 맞았다”며 “기업 수의 99%, 고용의 88%를 책임진 중소기업의 성장이 일자리 양과 질을 높이면서도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며 동반성장을 위한 상생을 강조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반성장 활성화를 위한 동반성장 지수 공표,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선정, 대·중소기업 간 기술개발 협력과 생산성 향상 등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동반성장위원회 활동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정운찬 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연초 설정한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이익의 일부를 협력업체에 자율적인 투자 형태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반응은 확연히 엇갈렸다. 특히 재계 반발이 거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말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로 동반위에 직격탄을 날렸다. 동반위 주무부처 지식경제부도 현실적으로 정형화되기 힘들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중소기업 시각은 달랐다. 김동선 당시 중소기업청장은 “이익공유제가 많은 논란을 빚고 있지만 이념 문제를 떠나 기본적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중소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 초과이익을 공유한다는 기본 취지에 공감한다”며 “초과이익공유제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도입·운용하는 것을 전제로, 도입 기업에 한정해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으로 제안된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 시각이 확연히 다른 만큼 조정은 쉽지 않았다. 초과이익공유제 논의를 위한 전체회의에서 재계 위원들은 단체로 불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동반위는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을 세 차례 발표하고 초과이익공유제 명칭을 `협력이익배분제`로 바꾸면서 제도 도입 여부를 기업 자율에 맡기는 등 소신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상생을 위한 동반성장 문화 정착은 쉽지 않았다. 동반위를 이끌던 정운찬 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 논란 속에 결국 2012년 초 사의를 표명했다. 정 위원장은 “더 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과 동반성장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 대기업,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지금 사직하는 게 최선”이라며 “대기업은 우리 사회의 동반성장을 말로만 외칠 뿐 전경련은 다시 태어나야 하고 필요에 따라 발전적 해체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발표도 많은 이슈와 논란을 뿌렸다. 적합업종에 선정되면 해당 사업 운영에 큰 차질을 겪을 수 있어 선정 여부를 두고 업계 논란이 컸다. 2011년 9월 1차 발표에는 고추장 등 장류, 세탁비누, 재생타이어 등 16개 품목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됐다. 동반위는 사업철수와 진입자제, 확장자제 권고로 대기업을 압박했다.
2011년 11월 동반위가 2차 중기 적합업종을 선정하면서 재계와의 갈등은 증폭됐다. LED 등 주조 등 16개 품목은 일부 사업철수, 두부·기타 판유리 가공품 등 5개 품목은 진입 및 확장자제, 내비게이션 등 세 품목은 반려가 결정됐다. 특히 LED조명 적합업종 선정이 논란이 됐다. 전경련은 즉각 LED조명 중기 적합업종 선정으로 외국계기업 잠식에 따른 국내 산업 후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동반위는 이에 대해 대기업 방어 논리에 불과하며 LED조명 적합업종 선정은 조화로운 균형 발전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동반위는 12월 차량용 블랙박스·변압기·가스절연개폐장치(GIS) 등 38개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추가 지정했다.
동반위 출범 이후에도 대·중소기업 간 상생에 대한 의견차는 여전하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동반성장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60.4%가 `1년 전과 변화 없다`고 답했다. `정부가 동반성장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응답은 30.9%에 그쳤고,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계속 할 것`이라는 응답은 19.4%에 불과했다.
◆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동반성장위원회 출범 배경은 무엇인가.
▲1997년 한국 경제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중소기업 간 낙수효과가 사라지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 양극화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안정을 꾀할 수 없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없이는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도 기업 역량이 기업 간 네트워크 파워로 평가되는 패러다임 변화가 진행되고 있어 대기업과 협력기업 간 동반성장 여부가 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게 하는 중요 요소가 됐다. 이러한 사회경제 및 국내외적 필요에 따라 2010년 12월 동반위가 출범하게 됐다.
-우리 사회에 동반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가치실현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먼저 `더불어 살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공동체 의식은 IMF 시기 `금 모으기 운동`처럼 국난 극복 과정에서 진가가 나타났다. 규제나 법률이 아닌 우리 국민성에 내재된 공동체적 가치를 끌어내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매개체가 바로 동반성장이다.
동반성장은 양극화 문제 해결책이기도 하다. 사회 근간을 흔드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시스템 정비·확대도 필요하지만, 양극화를 완화하면서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반성장을 통해 중소기업 경쟁력도 강화하고 일자리를 확대해 양극화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반성장은 대·중소기업이 함께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선행조건이란 점이다. 한 기업이 잘해서 성장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기업 간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협력해야 더 큰 기술적 진보와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동반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위원회는 대〃중소기업 간 갈등문제를 발굴·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설립된 순수 민간 자율조직이다. 지난해부터 위원회가 중점 사업으로 추진해온 `적합업종 지정`이나 `동반성장지수`도 대〃중소기업 간 사회적 합의로 이룬 결과물이다. 법과 규제가 아닌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갈등해결이 위원회가 지향하는 바다. 또 더불어 살기, 양극화 해결, 지속가능한 성장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반성장 문화 확산,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반위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와 동반성장 문화 가치를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하고, 신뢰받는 시장 질서를 회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다.
-동반성장을 정의한다면.
▲동반성장은 불균형·불균등을 지양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유효한 해법이다. 동반성장은 대·중소기업뿐 아니라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참여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가치다. 동반성장은 사회적 합의로서만 실현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다.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고 함께 가면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