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수입 비중 70% 고착화…국산화 퇴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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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백만달러, E는 전망치)

(자료: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외산 장비 수입액 비중이 여전히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 기준 전체 반도체 장비 시장의 85%에 육박하는 핵심 전(前)공정 장비 산업에서 국산화가 더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소자 업체들이 외산 장비에 절대 의존하면서 국내 장비 업체들은 차세대 공정 개발에서 소외되는 빈곤의 악순환이 심화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11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협회장 권오철)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외산 수입액 규모는 81억달러로 전체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에 국내에서 제작되는 국산 장비는 34억달러로 30%에 그칠 전망이다.

이 같은 반도체 장비 수입 비중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 반도체 장비 수입 비중이 80%에 육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 폭 개선됐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입 비중이 70%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짙다는 게 문제다.

미세 공정으로 진화하면서 노광기·식각기·화학증착기 등 핵심 공정 장비 시장에서 외산 업체들이 주도권을 더욱 강화하는 까닭이다. 최리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PD(반도체 공정/장비)는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전공정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84%에 이르며, 바로 여기서 국산화가 미진한 탓”이라며 “최근 국내 소자 업체들의 투자가 시스템 반도체 위주로 진행해 국산 장비가 더욱 소외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설비 투자 중 시스템 반도체가 처음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 오스틴 공장의 시스템 반도체 라인 전환, 화성의 신규 라인(S3) 건설 등이 이어졌지만 국내 장비 업체들은 수혜를 받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장비 업계는 메모리 공정용 장비 개발에만 머물러왔기 때문이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는 공정이 다양하고 복잡해 국내 소자 업체들은 외산 장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소자 업체들이 전공정 장비 분야에서 외산에 의존하면서 차세대 공정 개발에 맞춰 국산 장비를 개발하는 것이 더 어렵다”며 “장비 시장에서 국내외 업체들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심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소자 업체들이 차세대 공정 개발을 위해 핵심 장비 업체들과 공동 개발하는 추세는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핵심 전공정 장비 시장을 장악한 해외 업체들의 지배력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반도체 소자 업체들의 외산 장비 의존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도 크다. EUV(극자외선) 노광기는 물론이고 식각기, 화학증착기, 측정장비 등의 전공정 장비 부문에서 국산 장비 업체들의 원천 기술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향후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 투자가 메모리 위주에서 시스템 반도체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도 국산 장비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국내 업체들은 반도체 공정 로드맵조차 알 수 없어 차세대 장비 개발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이치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팀장(장비재료지원팀)은 “올해 국내 반도체 전공정 장비 시장은 81억달러로 단일 국가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산 장비 업체들은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 구조”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시스템 반도체 투자에 적극 나선 삼성전자로서도 원천 기술과 공정 노하우를 이미 확보한 미국·일본 업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국산 장비 업체들에 수요 대기업과의 다양한 정보 교류 채널을 제공하는 등 산업 전반적인 협업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장비 및 부분품 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매출 감소의 원인 및 애로사항으로 △고객 투자 정보 및 제품 개발 로드맵 확보 불가 △수요 업체의 장비 국산화 의지 퇴색 △광범위한 외투 기업 지원에 따른 국내 기업 경쟁력 약화 등이 꼽혔다.

반도체 장비 수입 비중 70% 고착화…국산화 퇴보 우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