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BOE, 인포비전, 티안마, CSOT 등 중국 업체 대형(9인치 이상) LCD 패널 출하량은 1400만대에 육박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5%나 급성장한 것이다.
중국 업체 LCD 시장 점유율도 사상 처음 8%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대만과 일본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했다. 특히 일본 업체 출하량은 511만대(3.0%)에 그쳐 중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과의 점유율 격차도 5% 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대형 LCD 시장에서 사실상 패퇴했다는 평가다.
바야흐로 중국이 우리나라, 대만과 함께 3대 LCD 생산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LCD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선 중국이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던 관측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LCD 대형화 본격 나서=지난달 중국 선전에서 열린 `중국광전디스플레이전시회(CODE) 2012`은 중국 LCD 업체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제품은 CSOT가 선보인 세계 최대 110인치 LCD 패널이었다. 이 제품은 지난해 하반기 8세대 양산에 본격 나선 CSOT가 단기간에 대형 LCD 패널 기술을 완성했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화의 별`로 명명된 이 패널에는 4K×2K급 고해상도에 120㎐ 구동 속도 및 셔터 글라스 방식 3차원(D) 기술 등이 채용됐다. 전시회 첫 날부터 이 대형 패널 앞은 기념사진을 찍는 현지 관람객으로 붐볐다.
하지만 전시회 현장에 실제 구현된 화면은 여러 장의 사진을 편집한 영상으로 화질과 동영상 성능 등을 가늠하기에는 한계를 나타냈다. 결국 중국 LCD 산업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전시회에 참가한 국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8세대 LCD를 양산한 뒤 현지 업체들 간에 치열한 기술 개발 및 패널 대형화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며 “CSOT의 110인치 패널도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규모와 외형을 과시하기 위한 보여주기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CODE 전시회는 자국 내에서 열린 전문 행사임에도 중국 최대 LCD 업체인 BOE는 참석하지 않았다.
◇강력한 정부 지원과 대규모 투자=중국 LCD 산업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8세대 양산으로 몸집 불리기에 돌입했다. 지난해 6월 베이징의 BOE 8세대 LCD 라인이 본격적 양산에 나섰다. 또 선전에 위치한 CSOT도 8월 8세대 라인 생산을 선언했다. 두 생산 라인 모두 5조원 안팎 대규모 투자가 단행됐다.
이처럼 엄청난 투자는 중국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뒷받침됐다. 실제로 BOE는 허페이의 6세대와 베이징의 8세대 LCD 라인 투자에 나설 때 지방 정부로부터 대출 어음 할인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지원 받은 금액이 무려 3억위안에 육박한다.
특히 BOE는 그동안 LCD 사업과 관련한 총 대출액이 200억위안을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이자·재무 관련 비용만 10억위안 이상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LCD 업체들은 대규모 적자에도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LCD 업체가 설비 투자할 때 중앙 정부가 일부 금액을 환급하는 지원책도 있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LCD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는 것은 첨단 산업을 키워 자국 내 고용 효과를 창출하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또 세계 최대 LCD TV 수요처로 부상한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 1위 LCD 생산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방 정부까지 LCD 투자 유치 경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환발해지역 △상하이 인근 장강삼각지역 △광저우 중심 주강삼각주 및 남부 지역 △청두, 우한 등 중서부 및 북부지역 등으로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이 중국 전역에 퍼져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안현승 디스플레이서치코리아 사장은 “중국 중앙 정부가 지난 2009년 6세대 이상 대형 LCD 산업을 중점 육성 항목으로 명시하고 라인 건설을 적극 유도했다”며 “지방 정부도 투자 자금 마련 등 각종 우대 정책을 쏟아내고 기업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고 말했다.
현지 업체는 물론이고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 국내 LCD 업체까지 중국 내 팹 건설에 적극 나선 이유다.
◇중국발 구조조정 가속화=지난 2009년 하반기 이후 2010년 상반기까지 대형 LCD 시장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경기 진작을 위해 가전 제품 소비 유도 정책을 펼친 중국, 일본 등 주요 TV 시장의 활황 덕분이었다.
업계 선두였던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사상 최대 분기 실적 기록을 이어갔다. 하지만 2010년 하반기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선발 업체들의 대규모 라인에서 생산된 패널이 밀어내기 식으로 시장에 풀리면서 재고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2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LCD 공급 과잉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8세대 양산에 나선 시기도 대형 LCD 공급 과잉이 심화되던 때다. TV용 패널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모든 LCD 패널 업체 적자가 이어졌다. 중국 LCD 업체도 8세대 양산에 앞서 업계 불황에 따른 수율 개선과 시장 확대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을 정도다.
중국의 급부상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대만을 포함한 세계 LCD 업체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중국 업체 부상에 대비하고자 최근 우리나라 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 LCD사업부 분사 및 SMD와의 합병, LG디스플레이 조직 개편 등은 향후 펼쳐질 LCD 치킨게임에 대비한 성격이 강하다. 대만과 일본도 정부 주도로 업계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70인치 이상 초대형 LCD 패널 및 480㎐ 고속 구동 기술, 선도적 3D 패널 기술 등은 아직까지 국내 업체가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신시장을 선점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초 연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진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회장은 “중국의 부상에도 우리나라 LCD 업체 시장 점유율은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며 “이는 기술 및 원가 경쟁력에서 우리나라 업체가 대만, 일본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기술 및 점유율 격차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기초 연구개발과 신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대형 LCD 출하량 및 시장 점유율 추이 (단위:만대, %)
(자료:디스플레이서치)
◇중국, LCD 넘어 OLED까지 넘봐
중국은 대형 LCD를 넘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도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AM OLED는 기술 원조인 일본과 대만도 이제 막 상용화에 나선 차세대 기술 시장이다. 중국은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신속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OLED 산업 육성 전략의 구심점은 `중국 OLED 산업연맹`이다. 지난해 6월 광동성 후이저우에서 창립된 연맹은 중앙 정부 조직인 중국공업화신식화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지원 하에 2년여의 준비를 거쳐 결성됐다. 이리코·BOE·비저녹스·티안마 등 현지 패널 업체는 물론이고 장비·재료 기업을 망라한 19개 업체가 창립사로 참여했다.
연맹은 국내외 OLED 및 기타 산업과 기술·경제·지재권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협력, 자국 내 OLED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다양한 표준 활동으로 인증과 마케팅 및 제품 인증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중국공업화신식화부 관리가 연맹 비서장을 맡을 정도로 OLED 산업에서 정부 역할이 두드러진다. OLED 분야에서도 지방 정부의 육성 정책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BOE가 네이멍구자치구 오르도스 시에 5.5세대 AM OLED 생산라인 건설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전기·용수 등 첨단 산업 인프라가 빈약한 지역적 특성에도 막무가내식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이멍구자치구는 첨단 산업 유치를 위해 지하 자원 개발권까지 당근으로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차원 투자 계획도 이어지고 있다. 티안마·비저녹스 등은 향후 1~2년 내 양산을 목표로 5.5세대 AM OLED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CSOT의 주주인 TCL 그룹도 올해 안에 4.5세대 OLED 및 저온폴리실리콘(LTPS) 연구개발 라인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은 최근 해외 OLED 장비 및 부품소재 업체 현지 진출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부족한 현지 연구개발 인프라를 외부 수혈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이 LCD에 이어 OLED 산업까지 팔을 걷고 지원에 나서면서 해외 장비·부품·소재 업체에 현지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서 중국의 대규모 LCD 투자가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듯 OLED 시장에서도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종석차장(팀장) jsyang@etnews.com 윤건일, 문보경, 이형수, 정미나, 윤희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