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곤 동진쎄미켐 전무는 직원들이 `전사자원관리(ERP)`라는 단어조차 생소해하던 1999년 4월 동진쎄미켐의 첫 ERP 프로젝트를 지휘했다. 1000억원 매출을 막 넘기던 시기였다. 배 전무는 시스템 자체가 아닌 IT로 가져올 수 있는 변화 가능성을 직시하고 ERP를 매개로 혁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10여년이 지난 후 동진쎄미켐은 최근 ERP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1조원 매출`을 향한 혁신활동의 일환이었다. 처음 ERP 구축 이후 10여년간 10배 성장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한 동진쎄미켐의 모든 혁신 과정에서 배 전무는 핵심 역할을 했다. 배 전무는 지금 경영전략팀과 IT팀을 총괄하며 동진쎄미켐의 경영전략 및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고정보책임자(CIO)다.
◇IT를 통한 프로세스 개선 앞장=배 전무는 “처음 와 보니 재무·회계팀이 매일 밤을 새워 수작업을 하고 있었다”면서 “소재기업으로서 글로벌 성장을 위해 시스템을 활용한 혁신 방안에 골몰했고 이후 `표준화`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절감했다”고 말했다.
당시 전산실장이던 배 전무는 사내 모든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는 ISO 표준화관리팀장을 추가로 맡아 ERP를 활용해 프로세스를 하나씩 정립하기 시작했다. 사내 프로세스를 갖추기 위한 도구로서 IT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CIO는 회사의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판단에서다.
배 전무는 “매출이 늘어날수록 사내 모든 프로세스가 IT로 표준화되고 매뉴얼만 보고도 쉽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했다”면서 “2000년대 초반 이 작업을 안정화한 후 경영전략 수립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관리가 효율화되면서 R&D와 영업에 자원을 집중 투자, 삼성전자·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등 주요 반도체·디스플레이기업에 핵심 재료를 납품하는 전자 소재기업으로서 회사 성장세도 더욱 높아졌다.
이어 지난 2009년 `2014년 1조원 달성` 비전을 세웠던 동진쎄미켐은 새로운 슬로건으로 `스피드업`을 내세웠다. 그해 상반기 시작한 프로세스혁신(PI) 활동과 글로벌싱글인스턴스(GSI) ERP시스템 개발은 업무 속도 개선을 위한 IT 새 틀인 셈이다. 국내 본사와 공장, 해외 전 사업장과 공장은 물론이고 자회사까지 대상으로 하는 신규 ERP 개발작업은 오는 8월 완료한다.
배 전무는 “1조원 달성 목표를 실현하자니 2000년도에 개발한 ERP시스템은 낙후돼 속도를 중심으로 전면 개선해야 했다”면서 “계획 수립부터 성과·실적관리까지 모두 ERP로 할 수 있도록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ERP뿐 아니라 생산관리시스템(MES), 품질관리시스템(QMS), 공급망관리(SCM), 그룹웨어 등 모든 IT를 개선 범위로 삼았던 차세대시스템은 지난해 가동 이후 동진쎄미켐의 많은 것을 바꿔놨다.
◇정확한 데이터로…회의 혁신한 글로벌 ERP=2009년 본격 시작된 ERP 개선작업은 오라클 e비즈니스 스위트 R12 버전으로 따로 분리돼 있던 본사와 해외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 골자였다. 따로 두었던 서버를 하나로 합치고 하나의 시스템에서 모든 경영정보를 실시간 집계 및 분석하도록 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에 대응하고 14일이 걸리던 연결결산 작업은 7일 수준으로 줄었다.
배 전무는 “기존 ERP시스템은 내부 거래를 통합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지사와 공장별로 실시간 데이터 취합이 안 돼 정합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면서 “월말 회계업무가 가중되고 인력과 시간 효율성이 낮았다”고 말했다.
실시간 ERP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영정보시스템(EIS)을 구축해 경영진이 월초·월중 회의 때도 구매·생산·출고·매출 등 글로벌 사업장의 정량 데이터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 ERP와 그룹웨어를 연계한 전자전표 및 전자결재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특효였다. 기존에는 담당직원이 전달받은 전표를 확인한 다음 도장 날인한 후 본사까지 전표를 전달하는 데만 하루가 더 걸렸다. 사내 모든 종이전표 관리가 시스템으로 이뤄지고 이동 중에도 결재가 가능해졌다.
배 전무는 ERP 효과를 정량 데이터에 근거한 핵심성과지표(KPI) 관리로 봤다. 배 전무는 “ERP 구축 이후 정성적 데이터가 사라지면서 정량적 데이터로 KPI를 만들어내고 개인 평가도 보다 정량화된 지표로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올해는 `예산제도`를 도입하고 팀별로 매출액 및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부서를 더 정확히 평가하고 보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부서는 이미 130%의 영업익을 달성하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임원회의 때도 보다 합리적 결정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영업이익 끌어올린 숨은 공신…6시그마 진두지휘=2000년대 중반 이후 배 전무가 주력한 것은 6시그마를 활용한 경영 효율화 활동이다. 회사 매출이 5배 이상 폭증한 지난 10여년간 관리인력은 고작 10명 늘어 70명 수준이다. 효율화된 IT와 6시그마 혁신활동에 힘입은 결과다. 회사는 잉여 자원을 원천기술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2006년 6시그마를 본격 도입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전사적 비용절감과 혁신과제 발굴을 배 전무가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과평가와 인사가 모두 6시그마 혁신활동과 연계되도록 하고 포상은 아끼지 않았다. 배 전무는 “6시그마 도입이 성공하려면 회사 목표와 일치해야 한다”면서 “매출과 영업이익 성과가 미비한 팀의 과제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면서 이들 성과를 높이는 툴로는 최적”이라고 설명했다.
팀별로 1년 매출액 목표와 손익 목표를 계획하고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6시그마 방법론(DMAIC)을 접목, 영업이익이 낮은 부서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과제를 선정해 이들 부서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전문 컨설턴트도 참여하며 6시그마 이외 자체 혁신과제도 수행한다.
직접과제 수행 및 교육에 참여하는 배 전무는 6시그마 활동 매니저다. 영업이익을 달성한 직원에게 고정비율만큼의 수익을 돌려주는 등 성과에 따른 포상도 과감하게 집행했다. 배 전무는 “6시그마 활동으로 매월 10억원씩 절감해 연간 1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 개선효과를 끌어내고 있다”면서 “그룹웨어 내 6시그마관리시스템으로 과제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한 직원이 2000만원의 상금을 타간 적도 있다고 한다.
배 전무는 마지막으로 “기업 정보화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 기획에 초점을 두고 프로세스를 개선해 정성적인 데이터를 정량화해 나가는 과정”이라면서 “수치 기반 평가가 정확해질수록 더 나은 목표를 세우고 다시 피드백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병곤 동진쎄미켐 전무는.
동아제약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등 제약업에서 IT 경력을 쌓은 이후 동진쎄미켐 전산실장을 거쳤다. 2000년도에 전산실장으로서 오라클 ERP 도입을 주도했으며, 뒤이어 2009년 글로벌 ERP 프로세스 혁신 및 시스템 개선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6년 이후 6시그마 혁신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해 왔다. 2007년 경영전략팀을 신설, 현재 비서실 소속 경영전략팀과 IT팀, K-IFRS팀을 총괄하고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