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유통 빅뱅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유통 체인 `베스트바이(Best Buy)`가 연내 미국에서 50개 매장을 폐점하고 소형 모바일 매장을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베스트바이에서 28년간 근무해 온 브라이언 던 CEO는 전격 사임했다.

지속적 실적 하락을 겪어온 베스트바이의 결정은 온라인 유통 시장 규모가 커지고 오프라인 채널 비중이 약화되는 시장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미국 모두 모바일 제품 위주 소규모 체험 매장이 새로운 힘을 얻는 변화의 흐름 속에 놓여있다. 베스트바이는 이윤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중대형 가전 위주 대형 유통매장 대신 스마트폰과 소형 IT기기 위주 모바일 매장으로 수익성 개선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가전유통 거인, 온라인에 밀렸다=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박스에 포장된 채 쌓여 있는 LCD TV를 구매해 차로 싣고 가는 풍경은 일반적인 미국 가전 매장의 모습이다. 끝없이 높은 천장 아래 수많은 사람이 TV·PC 등을 박스째 구매하는 모습은 `저렴한 제품을 구매한다`는 이미지도 심어줬다. 그러나 세계 최대 가전 유통체인 베스트바이도 대세인 온라인 유통을 거스르지 못했다. 아마존 등 거대 온라인 유통업체가 부상하면서 지난해 17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유통업계의 큰 물결 속에 베스트바이가 추구했던 창고형 매장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베스트바이는 제품을 박스로 전시하는 창고형 매장 1100개 중 50개를 폐쇄하고 직원 400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총매장 수의 5% 남짓이지만 시사점은 크다. 가전제품 마진율이 점점 낮아지는데다 온라인 유통 대비 오프라인 가전 할인점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바이는 최대 경쟁사인 서킷시티가 2009년 파산하면서 미국 가전 유통시장 독주를 예상했지만 3년이 채 안 돼 경영난에 직면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유통 채널 비중이 옮겨가면서 성장세가 주춤해진 것도 주효하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오는 2016년까지 미국 온라인 유통 연간 성장률은 8.5%로 가장 높다. 뒤를 이어 클럽형 유통망(4.9%), 99센트 제품 매장인 달러 스토어(4.8%), 대형 유통매장(4.6%) 등으로 나타났다.

성장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통 채널은 편의점과 주유소(2.1%), 슈퍼마켓(1.5%), 할인매장(0.4%) 등으로 조사됐다.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 채널은 백화점(-0.4%), 가전전문 매장(-0.9%), 서점(-1.1%) 등으로 나타났다.

◇부상하는 온라인·모바일 매장=대형 가전 유통 체인이 축소되는 미국과 달리 국내 시장은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체 유통 체인을 두고 있고 하이마트와 전자랜드의 영향력도 크다. 이들은 매장 수를 늘리면서 유통 장악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 체인에서는 대형 생활가전 판매 비중이 높다. 반면에 노트북·카메라·휴대폰 액세서리 등 소형 IT기기는 온라인 판매 비중이 상당하다.

애플이 아이팟에 이어 아이폰·맥북과 주변 액세서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면서 애플 스토어를 중심으로 모바일 매장이 급부상했다.

내달 시행하는 휴대폰 블랙리스트제까지 겹치면서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노트북·카메라 등 다양한 소형 IT기기를 체험·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카메라 시장은 과거에는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는 체험형 매장이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로는 온라인 시장을 넘지 못했다. `가장 저렴한 곳=온라인`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으면서 체험 매장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된 것이다.

최근 급속히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모바일 매장은 오프라인 구매 비중이 절대적인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다른 IT기기를 배치해 수익성까지 고려했다. 라츠는 IT기기뿐만 아니라 청바지, 운동화 등 다양한 아이템을 구비해 수익성과 컨셉트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형 가전유통 중심인 디지털 프라자를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최근 삼성 모바일숍을 확대했다. 지난해 20여개에서 현재 70개 매장을 오픈했으며 연내 100개로 확대한다. 모바일 매장에서는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패드, MP4 플레이어 등 다양한 IT기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모바일 매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것은 큰 매력이다. 하지만 여러 사용자가 온라인에 게시한 제품 체험기를 읽고 가격비교사이트에서 최저가로 구매하는 강점도 크다.

현재 모바일 매장은 소형 IT기기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애플이 스마트TV를 출시하고 애플 스토어에서 TV판매를 시작하면 기존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른바 `유통 빅뱅`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다.

미국 내 대형 가전매장을 중심으로 제품을 판매해 온 국내업체 영업 전략도 일정 부분 수정이 필요하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미국 현지에서도 모바일 매장과 온라인 판매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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