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제주의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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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제주 강정 `구럼비` 터지는 소리. 화약내. 노리쇠가 탄피를 가늠자 오른편으로 퉁겨 낸 뒤 약실에서 피어오른 냄새. 고폭탄이 포구를 떠난 뒤 사방을 무겁게 내리누른 바로 그 냄새.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다.

쿵. `세계 7대 자연경관` 내려앉는 소리. 위산내. 명치끝이 타는 듯 따갑다가 울컥 목구멍을 역류한 냄새. 기침을 일으킬 정도로 묵은 데다 때론 알콜까지 섞였던 바로 그 냄새. 어찌할 수 없는 통증의 냄새다.

쿠웅 쿵. 제주가 또 깨지고 가라앉는다. 고려 삼별초 항쟁이 끝난 1273년부터 무려 100년 동안 몽골 직할을 견딘 곳. `4·3 피눈물` 흘린 그곳이 다시 아프다. 한국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특별 자치 지역이나 스스로 다스릴 환경을 제대로 꾸리기나 한 건지 의문시되는 바로 그곳이다.

엎치고 덮친 고통에 시름시름 앓는 제주에도 곧 4월이 온다. 제철 맞은 꽃이 제주를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까. 섣불리 “위로가 될 것”이라 말할 수 없되 주시할 `뜻있는 출발`이 4월에 시작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다. 제주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제주의 특별한 자치, 새로운 미래를 향한 작은 지표이자 동력이다.

생색내듯 제주에 건물 한두 개 짓고 마는 게 아니다. 2003년 3월부터 8년간 차분히 준비했다. 회사 중심(본사)을 옮긴다. 제주에서 일할 사람만 650명쯤 된다. 이재웅 다음 창업주가 제주를 “미래 가치가 잘 보전된 곳”으로 여겼듯 미래를 캐러 그곳에 간다.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낮게 엎드린 채 제주에 들어갔다. 이런 자세가 한라산을 베고 누운 `선문대 할망` 지평선에 건물 윤곽을 맞추는 노력으로 이어진 듯하다. 다음글로벌미디어센터를 건축한 이도 “(다음이 새 터를 다진 제주) 중산간 지역을 장바닥처럼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낮추면서 (자연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개발을) 세련되게 할 수 있음”을 내보이려 했다. 엊그제 다음이 일본 사회단체에 매각될 위기에 처한 `제주평화박물관`을 살리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한 것도 제주에 동화하려는 노력으로 나는 읽는다.

지역 속으로 깊이 배어드는 사람과 기업이 아쉬운 때다. 국가 경제·교육·문화 자원이 수도권에 밀집하는 현상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겠는가. 큰 변화가 필요하고, 제주로 간 다음처럼 뜻있는 시도가 귀중하고 요긴하다. 겉모양만 번드르르한 건물 몇 개 짓고는 `국가균형발전을 다 이룬 것`처럼 어깨를 추어올려선 곤란하다. 가뜩이나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위태로운 터다. 지역균형발전 지원 혜택이나 부동산 투기를 노린 꼼수를 쓰지 말라는 얘기다.

`제주의 다음`은 성공적이어야 한다. 기업·기관 이전뿐만 아니라 지능형 전력 생산·관리, 과학기술단지, 자연과 어울리는 삶처럼 크고 넓은 도전이 펼쳐지는 곳이어서다. 제주의 다음이 곧 한국의 미래다. 소탐대실하지 말자.


이은용 논설위원 ey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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