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PCB편-2회] 스마트 혁명의 숨은 주역 경성 PCB·반도체 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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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회로기판(PCB)은 반도체·디스플레이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구형 라디오부터 최첨단 스마트폰까지 모든 전자 기기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다. 부품 간 전기신호를 연결하는 PCB는 사실 스마트 혁명의 주역 중 하나로 꼽힌다. 얇고 가벼운 스마트폰·스마트패드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도 PCB 기술이 진화한 덕분에 가능했다. PCB 미세회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반도체·수동소자 등 더 작은 부품도 실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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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혁명이 가속화하면서 경성 PCB와 반도체 기판 진화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경성 PCB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스마트폰용 주기판(HDI)이다. 다층기판의 일종인 HDI는 8~10층 구조로 휴대폰에 최적화된 제품이다. 최근 HDI 기술의 핵심은 미세 패턴 적용과 스택 비아홀 확대로 모이고 있다.

그동안 HDI 미세패턴 기술 발전 속도는 느린 편이었지만, 스마트 시장을 계기로 최근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현재 상용화된 HDI 회로 선폭은 50~60㎛ 수준에 머물고 있으나 국내 선두업체를 중심으로 40㎛ 선폭 제품까지 개발되고 있다. 고광일 고영테크놀로지 사장은 “40㎛ 선폭의 HDI가 상용화되면 메모리 등 웬만한 칩은 별도의 반도체 기판 없이 직접 주기판에 장착할 수 있게 된다”면서 “HDI 기술이 이 수준에 달한다면 스마트 기기가 한 단계 더 진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층 기판에서 층간 신호를 전달하는 스택 비아홀(Via:쌓아놓은 PCB를 전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뚫은 구멍) 수 확대도 핫 이슈다. 삼성전기와 대덕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3층 비아홀 공정을 적용한 HDI 제조에 나섰다. 스마트폰에 롱텀에벌루션(LTE)·근거리무선통신(NFC) 등 기능이 첨가되면서 기존 2층 비아홀 HDI로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삼성 등 제조업체들은 고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3층 비아홀 HDI 채택량을 점차 늘리고 있다. 3층 비아홀 HDI는 2층 비아홀 제품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 PCB 산업에 또 한 번 새로운 성장 기회를 주고 있다.

LG이노텍은 전 층에 스택 비아를 적용한 애니레이어 HDI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에는 애니레이어보다 미세 패턴, 마이크로 비아 가공 수준을 높인 어드밴스트 애니레이어 HDI를 개발하기도 했다.

비아홀 층수를 늘리면 노이즈 발생량이 줄어 HDI 회로 설계에 유리할 뿐 아니라 반응 속도 및 멀티태스킹 성능 개선도 가능하다. 그러나 고층 비아홀 HDI 제조는 불량률이 높아 공정 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HDI 비아홀 층수가 늘어나면 표면처리 공정 단계가 늘어나 PCB 라인 회전율이 떨어진다”면서 “단기적으로 부품 수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PCB 업체들의 공정 수율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기판은 고집적 반도체를 주기판(HDI)과 연결하기 위해 고안됐다. 반도체를 실장하기 위해서는 10~40㎛의 선폭이 필요하지만, 주기판 선폭은 80~100㎛ 수준이다. 반도체 기판은 반도체와 주기판 간 미세회로 밀도 차이를 완충해주는 셈이다. 스마트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수가 확대되고, 반도체 사용량이 늘면서 반도체 기판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스마트 기기 AP에 사용되는 플립칩(FC) 칩스케일패키지(CSP) 기술 확보가 반도체 기판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다. CSP는 볼그리드어레이(BGA) 일종으로 공간효율을 최대화한 모바일용 반도체 기판이다. 반도체가 기판 면적 중 80% 이상 차지하는 BGA 제품을 CSP로 분류한다.

FC CSP 시장은 현재 삼성전기·킨서스 등 일부 업체들이 선점하고 있지만, LG이노텍·대덕전자 등 신규 업체들이 가세하면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LG이노텍과 대덕전자는 지난해 FC CSP 전용라인 투자를 단행했으며, 올해 생산능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스마트패드에 사용되는 AP용 FC CSP는 25㎛ 선폭 수준인데, 20㎛ 미세패턴으로 진화하고 있다. 삼성전기 등 일부 업체는 15㎛ 선폭의 FC CSP 개발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PC 중앙처리장치(CPU)에 사용되는 FC 볼그리드어레이(BGA)는 15㎛ 선폭 미세패턴이 적용되는 추세다. FC BGA는 FC CSP와 달리 ABF(Ajinomoto Build-up Film)라는 절연체가 사용된다.

ABF를 사용하면 반도체 기판에 미세패턴 구현하는 데 유리하지만 기판 두께가 두꺼워져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는 적용할 수 없다. 15㎛ 선폭 FC CSP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기초 소재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공정 기술이 개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운호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업체들이 스마트 기기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력만 뒷받침된다면 국내 PCB 업체들이 FC CSP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면서 “공정 기술뿐 아니라 핵심 소재 등을 국산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인쇄회로기판(PCB) 시장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 덕분에 빠른 속도로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다만 한·중·대만 3국은 스마트 기기 시장 확대를 기회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본은 지진 및 엔고 등 내우외환으로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중국 PCB시장은 지난해 전년 대비 9% 성장한 238억4400만 달러에 이른다. 세계 PCB 시장 비중의 41%를 차지했다. 올해는 임금인상·환경 규제 강화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7%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 PCB 시장은 단·양면, 다층 PCB에서 빌드업 PCB·반도체 기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되고 있다. 일본 PCB 업체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중국 투자를 확대한 덕분인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에서 생산한 PCB 용도는 소비가전용이 28%로 가장 비중이 크며, 휴대폰 등 통신기기 비중이 25%를 차지한다. 최근 전기차·스마트 자동차 시장 확대로 전장용 PCB 비중도 10%에 육박했다.

일본은 지난해 쓰나미·지진 피해 탓에 전년 대비 12% 감소한 99억700만달러의 PCB 생산액을 기록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17%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일본 PCB 업체들은 피해 복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엔고 현상이 지속이 수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엔고·높은 법인세율·노동 및 온실가스 규제 등 시장 환경 악화로 올해 일본 PCB 시장은 1% 성장률에 그칠 전망이다. 고부가 반도체 기판이 전체 PCB 시장 비중 37%를 차지하고 있어 그나마 선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은 지난해 전년 대비 9% 성장한 80억900만달러의 PCB 생산 규모를 기록했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14%로 세계 3위를 차지했다. 대만 PCB 시장은 중국 시장 수혜 덕분에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반도체 기판 등 고부가 PCB 비중도 38%로 높아졌다.

대만에서 생산한 PCB는 컴퓨터용 33%, 통신용 31%를 차지하고 있다. 저부가 제품 생산은 중국으로 이전되면서 소비가전용 비중은 20% 수준에 그쳤다.

유니마이크론·트라이포드·난야 등 대만 PCB 업체들은 올해도 중국 공장 생산비중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난야PCB는 쿤산에 세 번째 휴대폰 주기판(HDI) 공장을 설립했다. 트라이포드는 전장용 PCB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한편, 하이보드 일렉트로닉 등 중소 PCB 업체를 인수합병(M&A)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