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는 보는 것에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이를 견시관(見視觀)이라 한다. 한문으로 `볼 견(見)`은 보기는 보는 데 눈뜨고 있으니 보이는 것이다. 영어의 `see`에 해당한다. `견(見)`은 눈(目)을 크게 뜬 사람(人)의 눈으로 외부의 사물이나 현상이 보이는 것을 형상화한 한자다. `견(見)`은 눈앞의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이 말해주듯이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눈앞에 있어서 보이는 것이다.
`견(見)`은 또한 자기방식대로 보는 것이다. 자기 방식대로 본 의견과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남의 의견과 주장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면서 견해차(見解差)가 발생한다. 견해의 다름은 틀림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의견은 옳고 타인의 의견은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볼 시(視)`는 어느 차원에서 보느냐의 문제이다. `시(視)`는 `견(見)`과 `시(示)`가 결합해 어떤 대상을 보여 주거나 보는 것을 말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을 말한다. 시각차(視角差)가 발생하는 이유는 보는 각도(角度)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님 여럿이서 코끼리를 만진다는 군맹무상(群盲撫象)이 시사하듯 코끼리를 어느 각도에서 어떤 부위를 보면서 만지느냐에 따라 코끼리에 대한 시각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觀)`은 중심에서 보는 것이다. `볼 관(觀)`은 큰 눈을 가진 수리부엉이가 목표물을 응시하듯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을 무심코 시각적(視覺的)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서 자세히 응시(凝視)하면서 꿰뚫어보는 것이다. 관형찰색(觀形察色)이라는 사자성어가 말해주듯이 `관(觀)`은 마음을 떠보기 위해 얼굴빛을 자세히 살펴보거나 잘 모르는 사물(事物)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는 사물이나 현상의 겉모습만 보고 그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물을 보려면 눈동자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보면 볼수록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딜레마가 생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눈동자가 없어야 전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관(觀)`자에는 눈동자가 없다고 한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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